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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남정 南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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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남정
한자명 南正
본 관 의령(宜寧)
이 명 호 : 화산(華山), 자 : 명충(明忠)
출신지 충남 당진(唐津)
생몰년월일 1880. 5. 19 ~ 1950. 7. 20
운동계열 만주방면
관련 단체 의성단, 고려혁명군, 조선혁명군 대본영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906년 홍주의병 참여, 1920년 의성단, 1924년 고려혁명군, 1926년 조선혁명군 대본영 활동, 조선총독부 신청사 낙성식 폭탄 투척위해 국내 잠입, 서울의 사직동 공원, 가회동 뒷산 등지에서 활동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1)

1880년 5월 19일 충청남도 당진시(唐津市) 대호지면(大湖芝面) 도이리(桃李里)에서 장사랑(將士郞)에 추증된 남정우(南廷虞)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의령(宜寧), 호는 화산(華山)이고 자는 명충(明忠)이다.

26세인 1906년 민종식(閔宗植)이 이끄는 홍주(洪州)의병 소모장(召募將)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전라도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고, 1909년 대종교 대법사로 활동하였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20년 만주의 회덕현(懷德縣)과 장춘현(長春縣) 일대에서 편강렬(片康烈)·양기탁(梁起鐸) 등과 함께 의성단(義成團)을 조직하고 고문에 선임되어 장춘의 일본영사관과 심양의 만철병원을 습격하는 등의 활동을 지도하였다. 또한 만주흥업조(滿州興業組)의 총재가 되어 길림성 주하현(珠河縣) 등지에서 논을 개척하여 재만 동포들의 민생문제 해결과 독립군의 군비를 조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의성단 단장인 편강렬이 일제에 체포된 후인 1924년 의성단이 정의부(正義府)에 흡수되자 정의부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 길림성 중한합판농회(中韓合辦農會)에서 변무처장(辨務處長)과 고려혁명군단장을 지냈다. 1926년 5월 조선혁명군 대본영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일제에 항쟁하였다.

조선총독부 신청사의 낙성식이 1926년 10월 1일에 있음을 탐지하고 이날 폭탄을 투척하기 위해 국내에 잠입하였다. 서울의 사직동 공원, 가회동 뒷산 등지를 근거로 하고 활동하다가 1926년 10월경 종로경찰서 형사에게 붙잡혔다. 1927년 8월 3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룬 후 고향 도이리에서 거주하였다.

광복 후에는 광복군 국내지대 사령부 고문을 맡다가, 1948년 대한민국총동원본부 소속으로 서산군 갑구의 제헌국회 의원에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50년 6·25전쟁 당시인 7월 20일 붙잡혀 당진시 정미면 승산리에서 희생되었다.

1994년 11월 고향에 있던 묘소를 대전 현충원으로 이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상기⋮

|참고문헌|

「판결문」, 경성지방법원, 1927. 8. 31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7권, 1976 ; 남중우, 『애국지사 해강선생유집』, 2007 ; 김상기, 『도호의숙』, 당진문화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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