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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나정문 羅正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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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나정문
한자명 羅正紋
본 관 나주(羅州)
이 명 호 일도(一島)
출신지 전라남도 보성(寶城)
생몰년월일 1892. 11. 28 ~ 1944. 2. 7
운동계열 만주방면
관련 단체 대종교
관련 사건 임오교변
주요 활동 1909년 단군교(대종교) 입교, 1941년 대종교 교적 간행회 총무, 1942년 10월 천진전 건축 주비회 발기인, 1942년 11월 임오교변으로 사망.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1)

1892년 11월 28일 전라남도(全羅南道) 보성군(寶城郡) 벌교읍(筏橋邑) 칠동리(七洞里) 금곡 마을에서 태어났다. 호는 일도(一島)이며 대종교(大倧敎) 1세 교주 나철(羅喆)의 둘째 아들이다. 어릴 때는 고향에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나철의 스승이자 후원자인 김윤식(金允植)의 도움으로 서울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원산농공은행에서 2년간, 성진척식은행에서 6년간 근무하였다.

 

1909년 1월 15일 단군교 중광 당시에 입교하였다. 단군교는 1910년 8월 5일 대종교로 교명을 개칭하였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닝안(寧安)현 동경성(東京城) 대종교 총본사로 갔다. 1941년 대종교 서적 간행회 총무, 1942년 10월 3일 천진전 건축 주비회 발기인 등으로 활동하였다.

 

대종교의 교세가 나날이 확장되고 독립운동 세력으로 발전하게 되자 일제는 1942년 임오교변(壬午敎變)을 일으켜 대대적으로 대종교를 탄압하였다. 임오교변은 당시 서울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하던 이극로(李克魯)가 대종교 제3세 교주 윤세복(尹世復)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된 ‘널리 펴는 말’이란 제목의 원고를 일제가 검열 과정에서 조작한 사건이다. 이극로의 원고 중에서 ‘널리 펴는 말’이라는 제목을 일제가 「조선독립선언서」로 바꾸고, 내용 마지막 부분의 ‘일어나라 움직이라! 한배검이 도우신다’라는 구절을 ‘봉기하자 폭동하자! 한배검이 도우신다’라고 날조하여 대종교를 대대적으로 탄압하는 빌미로 삼았다.

 

1942년 11월 19일 임오교변으로 만주와 국내에서 윤세복, 안희제를 비롯하여 형 나정련과 함께 총 21명의 대종교 간부들이 붙잡히고 대종교 총본사의 각종 비품과 서적을 압수당하였다. 무단장(牡丹江) 액하감옥(掖河監獄)에 수감된 지 15개월 만에 병보석으로 출감하였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3일 만인 1944년 2월 7일 사망하였다. 대종교에서는 당시 사망한 나정문과 권상익(權相益)·이정(李楨)·안희제·나정련·김서종(金書鍾)·강철구(姜鐵求)·오근태(吳根泰)·이창언(李昌彦)·이재유(李在囿) 등 10명을 ‘임오십현(壬午十賢)’ 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동언⋮

|참고문헌|

문일민, 『한국독립운동사』, 애국동지원호회, 1956 ; 김승학, 『한국독립사』 하, 독립문화사, 1965 ; 대종교총본사, 『대종교중광60년사』,1971 ; 대종교총본사편, 『임오십현순교실록』,서울대학교출판부, 1971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8권, 1976 ; 박달재수련원, 『애국지사 단암 이용태 선생 문고』, 동화서관, 1997 ; 박성수,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북캠프, 2003 ; 이동언, 「이용태의 생애와 대종교 독립운동」, 『내가 몰랐던 독립운동가 12인』, 선인, 2013 ; 이동언, 「백산 안희제의 대종교 독립운동과 순국」, 『백산 안희제의 생애와 민족운동 - 백산안희제선생순국70주년추모위원회 편』, 선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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