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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한경 金漢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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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한경
한자명 金漢經
본 관 경주(慶州)
이 명  
출신지 경상남도 부산(釜山)
생몰년월일 1927. 4. 28 ~ 1946. 2. 18
운동계열 국내항일
관련 단체 무궁당
관련 사건 무궁당 사건
주요 활동 1945년 비밀결사 무궁당 결성 활동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5)

1927년 4월 28일 경상남도 부산부(釜山府) 영주도(瀛州洞)에서 아버지 김근이(金根伊)와 어머니 정차수(鄭次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다.

 

1940년 3월 부산제2공립상업학교에 입학, 재학 시절 부친이 광산업 경영 중 일본인에 의해 파산한 것을 목격하고서 반일 감정이 생겼다. 비밀결사 무궁당(無窮黨)을 결성하여 활동하다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43년 10월 총독부의 제4차 「조선교육령」 개정에 따라 1944년 4월 1일 모교가 공업학교로 강제 전환되었고 12월 22일 제32회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5학년을 마쳤다. 이후 5년제 상업학교는 4년제 공업학교로 바뀌었다.

 

조국 광복을 실현할 목적으로 부산중학을 중퇴한 이영일(李榮一)과 함께 1945년 부산제2상업학교 32회 졸업생(11명), 초량상업학교, 입정상업학교 등 졸업생들과 비밀결사 무궁당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같은 해 6월 2일 밤 10시~11시 동지 김무양(金務陽) 집에서 이영일·김무양·김상구(金相九)·오필수(吳弼守)·최창열(崔昌烈) 등 6인이 모여 비밀회의 중 부산헌병대에 탐지되어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고, 다음날부터 2, 3일 간에 박희원(朴喜元)·박옥현(朴玉鉉)·박세원(朴世源) 등 무궁당원 20여 명이 전원 체포되었다.

 

이로써 부산헌병대에서 신상묵 및 ‘아라이(新井) 헌병보’로 악명 높았던 박종표(朴鍾杓)에게 흉부를 결박한 뒤 횡포한 구타를 당하거나 비행기식으로 매달리고서 난타당하는 식의 혹독한 고문과 취조를 당하여 결사 내용을 자백하게 되었다.

 

1945년 6월 30일 기소의견으로 송치되어 부산형무소에 이감되어 미결수로 지내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아 옥에서 나왔다. 그러나 흉부 고문으로 인한 폐병과 소화기질환 등 여독을 앓다가 이듬해 2월 18일 2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증인신문조서(국사편찬위원회) [판형1]

 

⋮조준희⋮

|참고문헌|

「박희원 증인신문조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1949. 3. 9 ; 「최창렬 증인신문조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1949. 3·10 ; 『부산신문』, 1949. 3. 3 ; 『조선중앙일보』, 1949. 3. 4 ; 부상백년사편찬위원회, 『부상백년사』, 부산상업고등학교동창회, 1995.
  • 증인신문조서(국사편찬위원회)
  • 증인신문조서(국사편찬위원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