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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영환 金永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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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영환
한자명 金永煥
본 관  
이 명  
출신지 경상남도 창원(昌原)
생몰년월일 1895. 7. 8 ~ 1919. 4. 3
운동계열 3.1운동
관련 단체  
관련 사건 창원군 진전면 만세시위
주요 활동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면 만세시위 참여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1)

1895년 7월 8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진전면(鎭田面) 동산리(東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창원군 진전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본 군경의 사격에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창원군 진전면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28일 창원군 진동면(鎭東面) 고현(高縣)시장 만세시위를 주도한 변상태(卞相泰)·권영대(權寧大)·권태용(權泰容) 등이 일본 경찰의 검거를 피해 은신하면서 2차 만세시위를 계획하여 전개되었다. 변상태 등은 인근 지역의 뜻을 같이하는 인사들을 규합하여, 4월 3일 진전면 양촌리(良村里) 냇가에서 제2차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4월 3일 9시 진전면 양촌리 냇가의 둑에 태극기가 휘날렸고, 만세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이때 참여하였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가 선창되자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일본군 헌병주재소가 있는 진동면으로 행진을 시작하였다. 진동면 주민들도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부른 후 진전면의 시위대에 가세하면서 시위군중은 5,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2시 시위대가 진북면 사동리(社洞里)의 사동천교(社洞川橋) 앞에 이르렀을 때, 급보를 받고 출동한 일본 헌병과 보조원 8명, 재향군인 30여 명이 시위대와 충돌하였다. 그런데 마산(馬山)에서 지원 출동한 일본군 야포대대가 합세하면서 발포를 시작하였다. 일본 군경의 사격이 시작되면서 시위대는 해산하였는데, 이때 일본 군경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사동교 3·1운동 만세시위지(경남 창원) [판형1]

 

양촌리 만세시위에서 희생된 8의사 창의탑(경남 창원) [판형1]

 

 

⋮배석만⋮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3권, 1971 ; 김진호·박이준·박철규, 『국내 3·1운동Ⅱ- 남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마산시사편찬위원회, 『마산시사』, 2011.
  • 양촌리 만세시위에서 희생된 8의사 창의탑(경남 창원)
  • 사동교 3·1운동 만세시위지(경남 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