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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재황 金在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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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재황
한자명 金在璜
본 관  
이 명 창씨명 : 산상재황(山上在璜)
출신지 세종(燕岐)
생몰년월일 1917. 4. 18 ~ 2004. 12. 7
운동계열 학생운동
관련 단체 조선학생동지회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939~1941년 학생비밀결사인 조선학생동지회에서 활동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0)

1917년 4월 18일 충청남도 연기군(燕岐郡, 현 세종시) 동면(東面) 내판리(內板里)에서 태어났다. 1940년대 초 비밀결사에 가입하여 학생운동에 나섰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에 재학 중이던 1939년 12월 서울 사직동(社稷洞)에 있던 도정궁(都正宮)에서 같은 학교 학생 김상흠(金相欽)·서영원(徐泳源)·윤주연(尹柱淵)·김영하(金永河)·이동원(李東元)·민영로(閔泳魯) 등과 일본 도쿄(東京) 유학생 대표 백재호(白在鎬) 등 4명과 함께 학생운동 단체 조선학생동지회(朝鮮學生同志會)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국내의 주요 도시를 비롯해 도쿄 등 해외 유학생들 사이에도 조직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또한 조선학생동지회는 1919년 만세운동과 같은 방식으로 거족적인 독립운동을 계획하여 1942년 3월 1일 정오를 기해 국내외에서 일제히 조선독립선언문(朝鮮獨立宣言文)을 발표하고 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를 위해 1940년 2월부터 1941년 7월 사이에 남한산성(南漢山城), 서대문구 냉천정(冷泉町) 약수터, 연희전문학교 뒷산, 경기도 고양의 벽제관(碧蹄館) 등에서 여러 차례 모임을 가졌는데, 여기에 참여하여 동지 규합과 조직 확대에 힘을 쏟는 한편 거사 계획을 준비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던 중 1941년 7월 하부 조직인 원산상업학교(元山商業學校) 조직원이 연락차 서울로 오다가 일제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조직이 발각되었다. 이로 인해 같은 해 9월에 다른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으며, 연희전문학교에서도 퇴학당하였다. 이후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함흥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후, 1943년 3월 17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같은 해 8월 14일 풀려났다.

 

1945년 8월 광복 이후 연희전문학교에서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추가 졸업장을 수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변은진⋮

|참고문헌|

「신분장지문원지」 ; 「학적부」, 연희전문학교 ; 「朝鮮學生同志會略史」(자체작성) ; 경기도사편찬위원회, 『경기도항일독립운동사』,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