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제 金仁濟 |
한글명 | 김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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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金仁濟 |
본 관 | |
이 명 | |
출신지 | 평안남도 순천(順川) |
생몰년월일 | 1896 ~ 미상 |
운동계열 | 만주방면 |
관련 단체 | 광복단 |
관련 사건 | |
주요 활동 | 1919년 12월 31일 평남 성천군에서 밀정 정현조(鄭鉉祚)의 집 소각, 1920년 1월 21일 금융조합 이사 영중영길(永重英吉) 처단 |
포상훈격(연도) | 애족장(2011) |
1896년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신창면(新倉面) 숭덕리(崇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후, 만주(滿洲)로 건너가 광복단(光復團)의 단원이 되었다. 광복단은 만세운동 직후 김성극(金星極)·김성륜(金聖倫) 등이 결성한 독립군단(獨立軍團)이었다. 이범윤(李範允)을 단장으로 추대했으나, 운영은 두 사람이 주도하였다. 본부는 왕칭현(汪淸縣)에 두었고, 안투현(安圖縣)에 1개, 창바이현(長白縣)에 3개의 분단(分團)을 설치했으며, 유격대를 구성해 국내진입작전을 펼쳤다.
1919년 12월경, 한국원(韓國源)·우승창(禹承昌)을 비롯한 5명의 동지와 국내로 진입했으며, 같은 달 31일 평남 성천군(成川郡) 삼덕면(三德面) 문원리(文源里)에 거주하는 친일 밀정 정현조(鄭鉉祚)의 집을 전소시켰다. 이듬해 1월 12일에는 금융조합 이사인 일본인 영중영길(永重英吉)을 처단하였다. 이어서 성천과 순천 등 평안남도 내 여러 지역에서 주재소 습격, 순사 처단,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펼쳤다. 일제가 대규모 수색대를 편성해 추격해 오자 만주의 본부로 귀대하였다.
이후 19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초 무렵 국내로 들어와 평남 성천군 영천면(靈泉面) 대평리(大坪里)에 거처를 마련하고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였으나, 평양경찰서 경찰대의 집요한 추격 끝에 1934년 2월 초 붙잡혔다. 1936년 4월 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광복단사건 2심 공판 보도(『매일신보』 1936. 1.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