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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남승하 南昇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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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남승하
한자명 南昇夏
본 관 영양(英陽)
이 명 자 : 우성(禹聖), 이명 : 남정하(南廷夏)
출신지 경상북도 청송(靑松)
생몰년월일 1872 ~ 1907. 4. 9
운동계열 의병
관련 단체 청송의진, 산남의진
관련 사건 1896년 감은리전투
주요 활동 1896년 청송의진과 1906년 산남의진에 참여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1)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현동면(縣東面) 거성리(巨城里)에서 아버지 남재희(南載熙)와 어머니 여강이씨(驪江李氏)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1872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본관은 영양(英陽)이며, 자는 우성(禹聖)이다. 이명으로 남정하(南廷夏)를 쓰기도 하였다.

 

1896년 3월 12일 의병을 일으킨 청송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족친 남석구(南錫球)·남석술(南錫述)·남석인(南錫仁)·남석우(南錫佑) 등과 함께 감은리전투(感隱里戰鬪)에 참여하는 등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일본의 국권침략에 분개하여 관동지방(關東地方)에서 동지를 모집하는 등 창의(倡義)를 준비하기도 했다.

 

이후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永川)에서 정용기(鄭鏞基)가 아버지 정환직(鄭煥直)의 명을 받고 산남 의병부대를 결성하였다. 이에 청송군 현동면 일대에 살고 있던 영양남씨(英陽南氏) 일족인 남석구·남석인 등과 함께 산남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향도(向導)를 맡아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6년 4월 영해(寧海)에서 활동하고 있던 신돌석 의병부대가 안동(安東)에서 파견된 관군에게 패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산남 의병부대의 정용기와 함께 신돌석 의병부대를 돕기 위해 수백 명의 의병을 이끌고 영해로 진군하였다. 4월 28일 신광면(神光面) 우각리(牛角里)에서 경주진위대(慶州鎭衛隊)의 참령(參領) 신석호(申錫鎬)의 간계에 속아 대장 정용기가 붙잡히자, 의병 활동을 중단하고 청송으로 귀향하였다.

 

1907년 4월, 산남 의병부대 대장 정용기가 다시 진용을 편성하고 재기하였다. 이에 청송 지역에서 의병을 모집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가 붙잡혀 1907년 4월 9일 청송군 현서면(縣西面) 화목(和睦)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참고문헌|

『산남창의지』 상·하, 1946 ; 산남의진유사간행위원회 편, 『산남의진유사』, 1970 ; 윤보현, 『영남출신 독립운동 약전』 1집, 1961 ; 김희곤 외, 『청송의 독립운동사』, 청송군, 2004 ; 조인회 외, 『영천의 독립운동사』, 영천항일독립운동선양사업회,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