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글자크기조절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남석술 南錫述

Profile Image
기본정보
한글명 남석술
한자명 南錫述
본 관 영양(英陽)
이 명 자 : 경숙(敬叔), 이명 : 남경규(南景圭)
출신지 경상북도 청송(靑松)
생몰년월일 1877 ~ 1907. 2. 24
운동계열 의병
관련 단체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895년 청송 심성지 의진 투신, 1906년 정용기의 산남의진에서 의병 모집과 군자금 조달, 1907년 정환직 의진에서 일본군과 교전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1)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현동면(縣東面) 도평동(道平洞)에서 남문철(南文喆)의 3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영양(英陽)이고, 자는 경숙(敬叔)이며, 이명은 남경규(南景圭)이다. 성장하면서 기골이 장대할 뿐 아니라 힘 또한 장사라 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과 단발령(斷髮令)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났다. 이때 국모의 원수를 갚고 왜적을 몰아내고자 하는 각오로 심성지(沈誠之)의 청송 의병부대에 들어가 감은리(甘隱里) 전투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고종(高宗)의 의병 해산 조칙(詔勅)으로 의진이 해산되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에 힘썼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정용기(鄭鏞基)가 일으킨 영천(永川)의 산남 의병부대에 투신하여 의병과 군자금을 모집한 뒤 청송(靑松)·청하(淸河)·흥해(興海)·영덕(盈德) 등 여러 곳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치렀다.

 

1907년 2월 24일, 동해안 영덕지방에서 여러 차례 적과 교전하였으나 적군의 우세한 화력에 밀리다가 결국 영덕 유암(酉岩)전투에서 일본군에게 잡혀 총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참고문헌|

『산남창의지』 하, 1946 ; 산남의진유사간행위원회, 『산남의진유사』, 1970 ; 윤보현, 『대한독립운동약사』, 1980 ; 김희곤 외, 『청송의 독립운동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