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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휘정 金輝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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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휘정
한자명 金輝珽
본 관 선성(宣城)
이 명 자 : 연옥(延玉)
출신지 경상북도 영주(榮州)
생몰년월일 1841 ~ 1901. 10. 10
운동계열 의병
관련 단체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895년 말 유인석의 거의에 호응하여 경북 순흥에서 창의, 이강년 의진과도 연대하며 항전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5)

본관은 선성(宣城)이고, 자는 연옥(延玉)이다. 출신지는 경상북도 순흥(順興)(현 영주시(榮州市) 순흥면(順興面))이다.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1841년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895년 당시 순흥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저항하여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1895년 말 충북 제천(堤川)에서 유인석(柳麟錫)이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호응하며 순흥에서 창의(倡義)하여 의병장에 추대되었다. 이때 유인석은 ‘능히 한쪽을 담당할 만하다’고 하였고, 문경(聞慶)에서 일어난 이강년(李康秊)도 ‘의로운 기상(氣象)’이라 칭송하였다.

 

1896년 5월, 고종이 칙유(勅諭)로 의병 해산령을 내리자 왕명을 빙자한 경군(京軍)이 내려와 의병을 탄압하였다. 여러 차례 전투를 치루는 동안 군사는 흩어지고 무기는 고갈되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험한 산곡(山谷)으로 들어가 머물면서 항전에 대비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적군이 몰려와 붙잡으려하자 아들 김건규(金建奎)가 자청하여 잡혀가 옥에 갇혔다.

 

얼마 후 아들이 대신하여 형(刑)을 받고 사망하였다. 유인석 의병장이 이때 “아버지는 나라를 위하여 천고의 대의를 일으키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하여 죽음을 대신하였으니, 이는 효도에 죽고 또 대의에 죽은 것이라. 모두 천하 후세에 길이 칭찬받을 일이다”라고 위문하는 글을 보내왔다. 이강년도 사람을 보내 “아들은 당연히 죽을 일에 죽었으니 아버지도 응당 죽을 일에 죽을 것이라. 한 집안에 효도와 의리가 어찌 그리 혁혁한가. 원컨대 시종일관하여 나라 일에 힘을 다하도록 합시다”라고 하여 아들의 죽음을 위로해 주었다.

 

위문에 대해 친족 김영시(金永詩)를 보내 답례하였다. 그 후 여러 전투를 거치면서 당한 부상과 또 아들을 먼저 보낸 충격으로 1901년 10월 10일 병사하였다. 이강년은 “의기로써 깊이 서로 믿어 왔는데, 그가 병사하였다”면서 통탄하였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참고문헌|

이강년, 『운강선생창의일록』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1, 1970 ; 김일수 외, 『영주독립운동사』,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영주시,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