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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준길 金俊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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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준길
한자명 金俊吉
본 관  
이 명  
출신지 전라남도 여수(麗水)
생몰년월일 1870 ~ 1909. 9. 18
운동계열 의병
관련 단체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909년 전남 지역에서 의병장으로 활동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1)

1870년 전라남도 여수(麗水)에서 태어났다. 1909년 전라도 지역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기까지 행적은 알 수 없다.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였고 1907년 6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한 일제의 압력으로 인해 고종은 7월 19일 순종에게 황제의 직을 양위하였다. 또한 7월 24일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체결로 대한제국은 행정권을 일제에 빼앗겼다. 나아가 협약 시행령에 준하는 부수각서(附隨覺書) 내용을 통해, 일본인이 대한제국 사법 관리에 임용되게 되었으며,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키는 조치가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1907년 8~9월에 걸쳐 대한제국 군대는 공식적으로 해산되기에 이른다. 대한제국 해산 군인들은 이 조치에 항거하여 각지에서 의병으로 분기하였다. 고종 퇴위와 정미7조약 체결 및 군대 해산으로 인해 궐기한 이들을 가리켜 정미의병, 혹은 후기의병이라 부른다.

 

이에 일제는 의병 ‘토벌’에 나섰다. 1907년 7월 하순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전에 일제는 한국에 일본군 보병 제12여단을 추가로 파병하였고, 이후 의병 ‘토벌’을 목적으로 도합 4차에 걸친 여단급 병력이 증파되었다. 이에 따라 의병은 1907년 11월부터 1909년까지 일본군과 약 5,000회의 전투를 치렀으며, 전투에는 1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의병으로 참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는 1907년 11월에서 1908년 7월까지 매달 평균 1,000여 명의 의병을 학살하였다.

 

전라도 지역은 을미의병 이래 노사학파(蘆沙學派)와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계열의 유림들을 중심으로 한 의병 활동이 활발하였던 곳이다. 이러한 전남 지역에서 부하 20명을 이끌고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1909년 9월 18일 전남 여수에서 서남쪽으로 약 40리에 위치한 자리(自里)에서 일본 군경에게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1권, 1970 ; 홍영기, 『한말 후기의병』,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홍영기, 「정미의병기 호남지방의 의병활동」, 『지역문화연구』 6, 2007 ; 홍영기, 「한말 나주의병의 주도 인물과 활동」, 『한국학논총』 34, 2010 ; 홍순권, 「한말 일본군의 의병 진압과 의병 전술의 변화 과정」, 『한국독립운동사연구』 45, 2013 ; 홍영기, 「한말 후기의병의 장기항전 전략과 전술」, 『역사학연구』 57,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