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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종달 金鍾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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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종달
한자명 金鍾達
본 관  
이 명  
출신지 경상북도 청송(靑松)
생몰년월일 1864 ~ 1909. 8. 11
운동계열 의병
관련 단체 신돌석 의병부대 
관련 사건  
주요 활동 신돌석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경북 영양ㆍ영해ㆍ영덕 등지에서 활동
포상훈격(연도) 애국장(2006)

경상북도 진보군(眞寶郡) 동면(東面) 백자동(柏子洞)[현재의 청송군(靑松郡) 현서면(縣西面) 백자동] 출신으로 1864년생으로 추정된다. 1909년 의병으로 활동하다 일제 경찰에 붙잡혀 희생되었다.

 

신돌석(申乭石)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경북 영양(英陽)·영해(寧海)·영덕(盈德)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신돌석은 영덕군 축산면(丑山面) 도곡리(陶谷里) 출신으로 1896년 영덕 의병부대에 참여하였고, 1906년 4월 6일 고향에서 영릉 의병부대를 일으킨 뒤 1908년 12월 12일 사망하기까지 2년 8개월 동안 활동하였다. 특히 1907년부터 1908년 사이 일본군의 집중적인 탄압작전에 맞서 일본군을 위협하는 유격전을 펼쳤다. 그러던 중 1908년 (음)11월 19일 영덕군 지품면(知品面) 눌곡(訥谷)에서 김상렬(金相烈) 형제들에게 살해되었다. 휘하에서 활동하던 군사들도 시세가 불리하여 흩어질 수밖에 없었으나 일부는 산속에 머물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신돌석 의진에서 영해와 영덕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중 진보군 동면 백자동 산간에 머물다가 1909년 8월 11일 진보군 동면 화매동 출신 이수목(李守睦)과 청송군 남면 마평동 출신 서고락(徐高洛)과 함께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지폐 한 장과 엽전 428문(文)과 양산 하나를 빼앗기고, 8월 14일 영덕경찰서로 잡혀가던 중 영덕군 동면(東面) 주동(酒洞) 산길에서 탈출하려다가 총살을 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종달 체포 관련 일제 측 문서(1909. 8. 23) [판형1]

 

 

 

⋮권영배⋮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 자료』 15, 1986 ; 김희곤 외, 『영덕의 독립운동사』, 2003 ; 경상북도, 『경북독립운동사』Ⅰ, 2012.
  • 김종달 체포 관련 일제 측 문서(1909.8.23)
  • 김종달 체포 관련 일제 측 문서(1909. 8.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