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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철 金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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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철
한자명 金哲
본 관  
이 명 최병일(崔秉一), 최동일(崔東一), 최병화(崔秉和)
출신지 미상
생몰년월일 미상 ~ 1930. 10. 25
운동계열 만주방면
관련 단체  
관련 사건 창바이현 삼도구 격전
주요 활동 독립군단 대대장으로 평안남도 지역에서 국내진입전 전개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5)

출생지, 출생일과 가족관계는 자료의 한계로 알기 어렵다. 이명은 최병일(崔秉一)·최동일(崔東一)·최병화(崔秉和)등을 사용하였다.

 

1930년경 남만주(南滿洲) 창바이현(長白縣)에서 독립군단(獨立軍團)의 지휘관으로 활동하였다. 소속된 독립군단명도 자료의 한계 상 알기 어려우나 직책은 독립군을 지휘해 일정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대대장(大隊長)이었다.

 

함경남도(咸鏡南道) 혜산(惠山)과 접해있는 창바이현에는 192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을 비롯한 여러 독립군단들이 본부 또는 지단(支團)을 두고 항일 무장활동을 펼쳤다.

 

1930년 8월 하순경 부하 대원 14명으로 결사대를 구성한 후, 이를 다시 2개의 유격대로 나누어 같은 달 23일 국내진입전을 맡았다. 1대는 평안북도 구성군(龜城郡)으로, 다른 1대는 평안남도 지역으로 진입해 일제기관 습격과 군자금모집 등 항일활동을 펼쳤다.

 

이 같은 활동에 일제는 결사대를 주목하고 1930년 10월 하순 혜산진경찰대를 창바이현으로 특파하였다. 그리고 중국 측에 압박을 가해 중국관군과 합동으로 수색작전을 펼쳤다. 창바이현 삼도구(三道溝) 근거지에서 부하 대원들과 다음 작전계획을 구상하다가, 중일 합동군의 공격을 받고 같은 해 10월 25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철 사망 보도 기사(『매일신보』 1930. 10. 29) [판형1]

 

⋮채영국⋮

|참고문헌|

『조선중앙일보』, 1930. 9. 10 ; 『매일신보』, 1930. 10. 29 ; 『동아일보』, 1930. 10. 30.
  • 김철 사망 보도 기사(『매일신보』 1930. 10. 29)
  • 김철 사망 보도(『매일신보』 1930.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