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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동진 金東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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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동진
한자명 金東鎭
본 관 선성(宣城)
이 명 자 : 국경(國卿), 호 : 정산(貞山), 석포(石圃)
출신지 경상북도 영주(榮州)
생몰년월일 1867. 1. 8 ~ 1952. 12. 22
운동계열 국내항일
관련 단체 독립의군부, 유림단
관련 사건 파리장서운동, 유림단사건
주요 활동 1914년 독립의군부 참가, 1919년 파리장서 서명, 1925년 내몽고 독립운동기지 건설운동 참여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3)

1867년 1월 8일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부석면(浮石面) 상석리(上石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김헌규(金獻奎), 어머니는 안동 권씨 권상곤(權相錕)이다. 본관은 선성(宣城), 자는 국경(國卿)이고 호는 정산(貞山) 또는 석포(石圃)이다. 서산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909년 순흥군 향교 직원(直員)을 지냈다.

1913년 국권 회복을 위해 임병찬(林炳瓚)·허위(許蔿) 등 유림이 조직한 비밀결사 대한독립의군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대한독립의군부는 국권 반환을 촉구하는 투서를 전국으로 발송하고, 태극기를 게양하는 운동을 벌이는 한편,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벌였다. 1914년 4~5월 사이에 임병찬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영주경찰서에 체포되어 20여 일 동안 조사를 받았다.

1919년 4월 한말 대표적 유림인 김창숙(金昌淑)이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를 보내는 서명운동을 추진하자, 곽종석(郭鍾錫)·장석영(張錫英) 등과 함께 이에 참여하여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였다. 이 사실은 4월 12일 경북 성주군(星州郡)에서의 만세 시위 운동을 빌미로 발각되었고, 40여 일간 투옥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이를 제1차 유림단사건이라고 한다.

1925년 8월 김창숙이 주도한 제2차 파리장서운동 때 김창숙의 사촌동생인 김창백(金昌百)이 자금 모집원으로 활동해 달라고 제안하자, 동의하고 함께 활동하였다. 1926년 4월 2일 김화식(金華植) 등 관련자 600여 명과 같이 체포되어 대구감옥에서 1개월간 구금되고 옥고를 겪었다. 이를 제2차 유림단사건이라 한다.

저술로 12권 7책의 『정산집(貞山集)』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신주백⋮

|참고문헌|

『황성신문』 1909.4.1 ; 『기려수필』 ; 경상북도경찰부, 『폭도사편집자료 고등경찰요사』, 1934 ; 『동아일보』 1928.8.10, 8.11 ; 심산기념사업준비위원회, 『벽옹일대기-심산김창숙선생투쟁사』, 태을출판사, 1965 ; 권대웅, 『1910년대 독립운동』,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8 ; 유림단 독립운동실기 편찬위원회, 『유림단 독립운동 실기』, 2001 ; 김희곤, 「제2차 유림단의거 연구」, 『대동문화연구』 38, 2001 ; 서동일, 『1919년이라는 문턱과 파리장서운동』, 선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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