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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상준 金尙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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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상준
한자명 金尙俊
본 관  
이 명  
출신지 경상북도 김천(金泉)
생몰년월일 1916. 12. 10 ~ 1996. 11. 5
운동계열 광복군
관련 단체 한국청년전자공작대, 한국청년간부훈련반, 인면전구공작대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944년 이후 광복 시까지 인도·버마의 대일 전선에서 인면전구공작대 대원으로 활동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0), 애국장(1990), 건국포장(1977)

1916년 12월 10일 경상북도 김천군(金泉郡) 농소면(農所面) 용암리(龍岩里)에서 태어났다. 1939년 11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 결성에 참여하여 중국 시안(西安)에 있는 중앙전시간부훈련단(中央戰時幹部訓練團) 제4단 내에 설치된 한국청년간부훈련반(한청반)에서 훈련받았다. 1941년 1월 1일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되었고, 조선의용대의 광복군 편입으로 1942년 4월 제2지대로 재편되었다.

1943년 5월 인도영국군 사령부와 조선민족혁명당 간에 ‘조선민족군선전연락대(朝鮮民族軍宣傳聯絡隊) 파견에 대한 협정’이 체결되면서, 광복군총사령부에서는 인도파견공작대(印度派遣工作隊)를 편성하였다. 영어 구사 능력과 신체 조건을 기준으로, 1지대에서 2명[한지성(대장)·이영수], 2지대에서 7명[문응국(부대장)·최봉진·김상준·나동규·송철·김성호·박영진]이 선발될 때 포함되었다.

1943년 8월 초부터 중국 중앙군사위원회에서 군사 교육 및 현지 실정 파악 등 예비 교육을 3개월간 받고, 8월 말 인도 캘커타로 파견되었다. 인도에 도착한 공작대 대원들은 9월 중순부터 약 3개월간 인도군총사령부에서 영어와 방송 기술을 중심으로 한 교육을 받은 다음, 영국군에 분산 배치되었다. 인도군 총사령부에 남은 3명을 제외한 6명은 부야크로 이동하여 다시 2개 분대로 나뉘어 영국군에 배속되었다. 문응국·나동규와 함께 1분대로 영국군 제201부대로, 2분대원 박영진·김성호는 제204부대에 배속되었다.

1944년 1월 7일 문응국·나동규와 함께 영국군 제201부대의 일원으로 임팔(Imphal)전선으로 출발하였다. 임팔은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버마와 접경 지역으로, 연합군이 중국군에 보급하는 전쟁물자 수송의 주요 통로였다. 이후 임팔지구로 공격해오는 일본군을 맞이하여 띠마플·티딤·비센플 등지에서 전투에 참여하고 최전선에서 대적 선전 방송·문서 해독·전단 제작·포로 심문 등을 수행하였다.

1945년에 들어 연합군의 일본군에 대한 총반격 작전이 개시되면서, 최봉진·이영수와 함께 버마 중부 지역을 우회하여 만달레이를 향해 북상하는 부대에 배속되어 활동하였다. 5월 연합군은 랑군을 탈환하였고, 7월 초에는 일본군을 완전 격퇴하였다. 이후 인도 캘커타로 철수하여 새로운 작전을 대기하던 중, 일제의 항복을 맞아, 9월 10일 충칭(重慶)의 광복군총사령부로 복귀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김정엽⋮

|참고문헌|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6권, 1975 ; 한시준, 『한국광복군 연구』, 일조각,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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