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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강일구 姜日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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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강일구
한자명 姜日求
본 관  
이 명  
출신지 충청남도 부여(扶餘)
생몰년월일 1910. 9. 23 ~ 1961. 3. 20
운동계열 국내항일
관련 단체  
관련 사건 부여 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
주요 활동 1930년대 부여 공산주의연구협의회
포상훈격(연도) 건국포장(2009)

1910년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 세도면(世道面) 청포리(菁浦里)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여공립보통학교(扶餘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한 뒤 경성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에 진학하였으나 곧 중퇴하였다. 그 뒤 중국으로 건너가 만주(滿洲)·봉천(奉天) 등지에서 지내다가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고학을 목적으로 건너갔고 다시 부여로 돌아왔다.

1931년 10월 구룡면(九龍面) 금사리(金寺里)에서 공산주의연구협의회(共産主義硏究協議會)가 이호철(李戶喆)의 주도로 결성되었다. 활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시월회(十月會)라는 이름을 표면적으로 사용키로 하고 부서별 책임자와 월례회를 결정하였는데 책임대표는 이호철, 서기는 노명우(盧明愚), 조사부는 장창선(張昌善), 평의원은 최재봉(崔在鳳)이었다. 여기서 공산주의 이론과 투쟁 방법을 연구하는 교양부를 담당하였다.

이들은 이 조직을 매개로 혁명적 농민조합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931년 11월 제1회 월례회를 끝으로 활동이 중단되었는데, 이호철이 북간도(北間島)로 건너갔기 때문이다. 1년 뒤 귀국한 이호철은 1933년 3월 23일 실천적이고 지도적인 결사를 조직할 것을 제안하여 공산주의자협의회(共産主義者協議會)를 결성하였다. 이와 함께 각 부락에 야학을 개설하고 연극, 강연을 개최하여 농민을 사상적으로 교양하기로 하였다. 홍산면(鴻山面)은 이호철과 노명우, 규암면(窺岩面)은 노명우와 오기영(吳祺泳), 부여면(扶餘面)은 유기섭(柳基燮)과 오기영이 맡았고, 장암면(場岩面)을 최재봉과 함께 분담키로 한다.

부여공산주의자협의회에 대한 보도(『매일신보』 1933.12.9) [판형4]

이 결정에 따라 부여 장암면 장하리(長蝦里) 장정(長亭) 마을에 있는 장정야학에서 교사 생활을 하였다. 운영자 강성구(姜星求)는 평소 일제의 식민지 교육 정책에 반대하며 부여 지역 사회주의 운동가로 활약한 인물로, 정정야학은 사회주의적 이념을 바탕으로 민중교육·문화운동을 펼치는 곳이었다. 교육 활동 외에 연극도 자주 공연하였는데 주요 내용은 일본을 물리쳐야 한다는 것이거나 만주로 싸우러 간다거나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비교하는 것이었다.

야학 학생들을 가르칠 교과목과 교과 재료를 선정하고 협의하려고 위해 강병국(姜秉國)·강성모(姜聖模)·강주구(姜柱求)·강병욱(姜秉郁)·강병환(姜秉煥), 최재봉과 함께 칠모회(七眸會)를 조직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1933년 9월 첫째 주 일요일 국제무산청년데이를 기하여 도쿄에서 다수의 전단이 전해지자 요시찰 인물들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가 일어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활동이 발각된다. 이 사건은 부여 공산주의자협의회사건, 충남적색비사사건(忠南赤色秘社事件), 금강공산협의회사건(錦江共産協議會事件), 충남공산당사건(忠南共産黨事件), 부여공협사건(扶餘共協事件), 부여재건사건(扶餘再建事件), 농촌적화공작사건(農村赤化工作事件) 등으로 불리며 충남 지역의 중대한 사상 사건으로 대두되었다.

1933년 12월 7일 충남 경찰부와 공주지방법원 검사국에 수리된 인원은 54명이었고 12월 8일 16명이 예심에 회부되었다. 1935년 6월 12일 예심(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5년 형을 선고받았고, 같은 해 11월 2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동일한 구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정혜인⋮

|참고문헌|

『동아일보』 1933.9.29, 1933.12.9 ; 『조선중앙일보』 1933.9.16, 1933.9.25, 1935.6.11, 1933.10.16, 1933.12.22 ; 「朝鮮思想事件判決竝豫審終結決定-共産主義硏究協議會, 共産主義者協議會, 農民俱樂部及七眸會議事件」, 『思想彙報』 제6호, 1936.3 ; 김용달,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제28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7 ; 장세옥, 「일제하 부여지역 동족마을의 농민운동 연구」, 『역사와 담론』 33, 호서사학회, 2002 ; 지수걸, 「扶餘 長亭 晉州姜氏 門中의 대종교 신앙과 민족운동」, 『한국근현대사연구』 34, 한국근현대사학회, 2005.
  • 부여공산주의자협의회에 대한 보도(『매일신보』 1933.12.9)
  • 배재고등보통학교 정문
  • 강일구
  • 부여공산주의자협의회에 대한 보도(『매일신보』 1933.12.9)
  • 충남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소재 추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