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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봉현 金鳳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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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봉현
한자명 金鳳鉉
본 관  
이 명 김순구(金舜九)
출신지 경기도 안성(安城)
생몰년월일 1885. 9. 16 ~ 1930. 3. 28
운동계열 3.1운동
관련 단체  
관련 사건 3.1운동
주요 활동 1919년 4월 1~2일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원곡면 독립만세운동 참여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0), 애국장(1990)

1885년 9월 16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현 안성시) 원곡면(元谷面) 칠곡리(七谷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부안(扶安)이고, 이명으로 김순구(金舜九)를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33세로 직업은 농업이었다. 1919년 4월 1~2일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陽城面)·원곡면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판결문(경성복심법원, 1921.1.22) [판형2]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었을 때,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각 마을 주민들은 1919년 3월 28일부터 매일 외가천리(外加川里)에 있는 원곡면사무소로 몰려가 독립 만세를 외쳤다.

4월 1일 밤 8시경 원곡면사무소 일대에서 칠곡리, 외가천리, 내가천리(內加川里) 등 원곡면 주민 약 1,000명이 만세 시위를 벌일 때 참여하여 함께 독립 만세를 크게 외쳤다. 이후 시위 군중과 함께 집에서 가져온 횃불을 들고 독립 만세를 부르면서 양성면 동항리(東恒里)를 향해 행진하였다. 밤 9시 50분경 양성면에 도착하여 이미 만세 시위 중인 양성면민들과 합류하였다. 밤 10시경 2,000명 이상으로 늘어난 시위 군중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양성경찰관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이때 최은식(崔殷植)·이희용(李熙龍) 등과 함께 돌을 던지고 몽둥이를 휘둘러 경찰관주재소 유리창·벽·기물들을 부수고, 횃불로 불을 질러 주재소 사무실·순사 기숙사 건물과 각종 문서·기물을 전부 불태웠다. 이어 김순서(金順西)·이규완(李圭完) 등과 함께 양성우편소로 몰려가 시설물·전화기·서류물품·집기 등을 파괴하거나 불태운 후 전화선마저 절단하였다. 또한 우편소 부근 전주 3개를 넘어뜨리는 등 격렬하게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에 붙잡혀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7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주봉⋮

|참고문헌|

「판결문(최은식 외 124인)」, 경성복심법원, 1921.1.22 ; 「김봉현 신문조서」,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제23권-3·1운동 13, 국사편찬위원회, 1994 ; 「김봉현 신문조서(제二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제25권-3·1운동 15, 국사편찬위원회, 1994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2권, 1971 ; 이정은, 「안성군 원곡·양성의 3·1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 1,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7 ; 허영란, 「만세시위의 다원적 의미와 지속되는 지역공동체-안성군 3·1운동의 새로운 이해」, 『역사와 현실』 113, 한국역사연구회, 2019.
  • 판결문(경성복심법원, 19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