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글자크기조절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득경 金得敬

Profile Image
기본정보
한글명 김득경
한자명 金得敬
본 관  
이 명  
출신지  
생몰년월일 미상 ~ 1909. 4
운동계열 의병
관련 단체  
관련 사건 후기의병
주요 활동 1909년 경상남도 의령 및 함안 일대에서 의병 활동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6)

출생 시기나 출신지 등은 알려진 것이 없다. 1909년 의병 활동 당시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및 의령군(宜寧郡) 등지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아 인근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해산 등의 영향으로 의병전쟁이 전국 각지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경남 지방에서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 주로 하동군(河東郡)·산청군(山淸郡)·의령군·단성군(丹城郡)·거창군(居昌郡) 등 지리산 인근에서 의병 활동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1909년 들어 지역 내 의병 활동이 감소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의령군 및 함안군 등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동료 의병들과 함께 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09년 4월 동지 6명과 함께 의령군 용암면(龍岩面)에 사는 전무진(田珷鎭)과 이인세(李仁世)의 집에 찾아가 군자금 제공을 의뢰하였다. 그런데 이 일을 탐지한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의병 1명이 죽고 조맹장(趙孟章)이 체포되었다. 일본군은 조맹장을 조사하여 의령군 및 함안군 일대에서 활동하던 의병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였다. 이에 의거하여 의령 주재 순사 3명과 일본군 수비대 5명 등이 4월 16일 함안군 남산면(南山面) 거주 박덕수(朴德守)를 체포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대신 다른 의병들의 소재를 파악하여 함안군 상리면(上里面) 인근을 수색하였다.

일제 문서에 기록된 김득경(1909.4.27) [판형3]

일본군 수비대가 압박해오자 정종도(鄭鍾道)와 함께 몸을 피하여 상리면 남쪽 숲속에 숨어있었다. 그러다가 인근을 수색하던 일본군 수비대에 발각되어 붙잡혔다. 일본군의 조사과정에서 용암면에서 동지들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한 사실을 인정하였다. 갖고 있던 화승총 2정은 일본군에게 압수되었다.

함께 붙잡힌 정종도 및 조맹장과 함께 호송 도중 밤을 틈타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여 일본군에게 총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양식⋮

|참고문헌|

「慶秘收 제453호, 暴徒討伐의 건」, 1909. 4.27, 『暴徒에 關한 編冊』(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자료』 14 의병편 7, 1985) ; 홍영기, 『한말 후기의병』,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일제 문서에 기록된 김득경(1909.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