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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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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붕해 姜鵬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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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강붕해
한자명 姜鵬海
본 관 진주(晋州)
이 명 강성건(姜成健)
출신지 전라남도 제주(濟州)
생몰년월일 1915. 1. 23 ~ 2006. 10. 9
운동계열 국내항일
관련 단체  
관련 사건  
주요 활동 일제의 군사기밀 유출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3)

1915년 1월 23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서귀면(西歸面) 서귀리(西歸里)에서 강문옥(姜文玉)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명은 강성건(姜成健)이다.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서귀포 공립보통학교의 촉탁교원을 거쳐 잡화상을 경영하였다. 1939년 5월부터 『동아일보』 서귀포분국장, 1939년 6월 1일부터 『동아일보』 제주지국 총무로도 활동하였다.

1941년 12월경 이른 새벽 일제 경찰에 연행되었는데 이유는 반전죄(反戰罪)였다. 즉 1938년 가을 서귀포천주교회의 아일랜드인 천주교 선교사 라이언(Thomas D. Ryan, 羅) 신부로부터 현재 일본·독일·이태리 3국이 동맹을 체결하고 있지만 영·미에서 독일이 패전할 경우 일본은 참혹한 맛을 볼 것이라는 말을 들었고, 1938년 겨울 라이언 신부에게 대정면(大靜面) 모슬포(慕瑟浦)의 해군비행장(알뜨르 비행장 : 현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에서 비행기가 발진하여 중국의 상하이(上海)·난징(南京) 방면을 도양폭격(渡洋爆擊)하고 있는데, 비행장 지하실에 폭탄을 저장해 두고 있는 모양이라고 말하여 군사시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였다는 것이었다.

1939년 봄 라이언 신부와 중일전쟁에 관한 대담을 나누던 중, “일본 신문에는 일본군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모두 거짓말이고, 중국이 미·영의 원조를 받아서 전쟁이 장기화하면 일본은 패망한다”라는 말을, 그해 여름 라이언 신부로부터 “일본 해군이 영국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행기를 보유하고 있는 소련이 한 번에 5만 대의 비행기로 일본 본토를 공격한다면 일본군은 패전할 것이며, 지금 일본군이 중국의 중요 도시를 점령하고 있으나 전쟁이 장기화하면 일본은 패전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해 9월경 라이언 신부에게 “중국군 비행기가 전라남도 목포(木浦)에 폭격하러 왔다가 일본 해군기에 의해 격추되었다”라는 말을 하여 군사기밀을 유출하였다는 것이었다.

오스틴 스위니 신부 [판형3]

1940년 4월경 서귀포천주교회에서 스위니(A. Sweeney, 徐) 신부로부터 “미국이 적극적으로 장제스(蔣介石)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은 장기화할 것이고 일본은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라는 말을, 그해 12월 서귀포천주교회에서 스위니 신부로부터 “일본 신문에서 보도하는 전과(戰果) 발표는 모두 거짓이고, 장제스가 일본 공군을 속이려고 인가가 없는 들판에 천막과 같은 것을 치고 있는데 일본군은 이를 중요 지대로 생각하여 폭탄을 투하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1941년 9월경 스위니 신부로부터 “중국에 출정하고 있는 일본군은 숫자가 적고, 소련·영국·미국과 일전을 벌이려 많은 일본군이 대기 중이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는 모두 반전(反戰) 행동이라는 것이었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제는 제주도를 중국에 대한 도양 폭격의 발진 기지로 만들면서 도내 반일 세력을 색출, 제거하기 위하여 먼저 ‘적성국(敵性國)’인 영국 국적의 아일랜드인 선교사들과 그들이 소속된 천주교회 조직을 탄압·파괴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모슬포비행장의 사진을 찍어 외국 잡지에 게재함으로써 적성 국가에 군사기밀을 유출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하였다는 이유로 제주도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3명의 아일랜드인 천주교 선교사 즉, 파트리치오 도슨 신부(P. Dawson, 孫, 제주중앙성당)·스위니 신부·라이언 신부가 체포되었다. 이때 강군평(姜君平)·김남식(金南植)·김중현(金仲鉉)·윤기옥(尹奇玉)·이응범(李應範)·하성구(河成九)·허봉학(許鳳鶴) 등 32명의 천주교 신자와 함께 체포되었다.

194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국방보안법 및 군기(軍機)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과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금고(禁錮) 10개월이 병합되어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1947년 4월 30일 서귀포성당에서 결성된 남제주군 독립청년회의 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이후 독립청년회를 중심으로 대동청년회 제주도지부가 결성되고 민주독립당의 발기인이 되었으나 1948년 1월 25일 성명을 발표하고 탈퇴하였다. 1949년 일본대양통제회사(日本大洋統制會社) 서귀포포경공장(西歸浦捕鯨工場) 사장이 되었다. 1950년 4월 1일 제주도 청년방위대가 조직되자 1개월간의 군사교육을 거쳐 예비역 육군 장교로 임관되어 제주도의 방위대장으로 방위 중령에 임명되었다.

1952년 5월 10일 제주도의회 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부의장을 지냈고, 1956년 8월 13일 실시된 제2회 도의회 의원 선거에서 남제주군 4선거구(서귀읍)에서 당선되어 재선 의원이 되었다. 1958년 제10대 도의회에서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1959년에는 의장에 당선되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 때에는 재건국민운동 남제주군 촉진의장으로, 1965년 1월 16일 조직된 서귀읍 개발위원회 위원으로 시(市) 승격에 앞장서서 활동하였다. 1995년 8월 광복회 제주도지부장으로 선출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윤선자⋮

|참고문헌|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42.10.24 ; 『동아일보』 1939.5.25, 6.15, 1953.11.29, 1956.8.16 ; 『대동신문』 1946.7.26 ; 「그동안에 … 二」, 『경향잡지』 1946.9.1 ; 『제주신보』 1947.1.18, 4.30 ; 『경향신문』 1958.8.24, 1987.12.23 ; 「서귀포 강성건애국지사 타계」, 『서귀포신문』 2006.10.9 ; 『경제연감』, 1946 ; Jeremiah F. Kelly, S.S.C., The Splendid Cause : 1933~1983, Seoul, Columban Fathers, 1983 ; 강용삼·이경수 편저, 『대하실록 제주백년』, 태광문화사, 1984 ; 『제주항일독립운동사』, 제주도, 1996 ; 김찬흡, 『20세기 제주 인명사전』, 제주문화원, 2000 ; 김찬흡, 『제주 항일인사 실기』, 북제주군·북제주문화원, 2005 ; 윤선자, 「1940년대 전시체제와 제주도천주교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2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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