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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영하 金榮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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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영하
한자명 金榮夏
본 관 진주
이 명 자: 중선(重先), 호: 송정(松亭)
출신지 전라남도 화순(和順)
생몰년월일 1878. 9. 19 ~ 1920. 4. 1
운동계열 국내항일
관련 단체 대한광복단
관련 사건  
주요 활동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0)

본관은 진주, 호는 송정(松亭), 자는 중선(重先)이다. 회헌공파 41대손으로 1878년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道岩面) 도장리(道莊里)에서 아버지 김노상과 어머니 밀양 박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용상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김용상은 회헌공파 40대손으로 그의 집안 아저씨로 전남 화순군 도암면 도장마을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를 잃자 의병에 가담하여 일제 침략에 항거하였다. 일제의 강압으로 의병이 흩어지자 비밀 조직인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 참가하였다. 전남 화순군의 경우, 1913~1914년경 대한광복단이 조직되었으며, 양재홍(梁),(在鴻)·박흥주(朴興柱)·이승정(李承正)·오재동(吳在東)·김성태(金成泰)·이계휴(李啓休) 등이 참여하였다.

 

1917년 정동근·고성후·양재홍·김교락·문재교 등과 뜻을 같이하고 이들과 함께 대한광복단 제일지단(第一支團)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또한 전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았으며, 나주의 정경원·윤덕열, 함평의 정치국 등 전남 도내 부호들에게 광복군 군자금을 출연하도록 종용하는 등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1918년 전남 함평에서 군자금 제공자의 밀고로 일제 당국의 체포령이 떨어지자, 고향인 전남 화순군 도장 마을로 돌아와 은신하였다. 하지만 1918년 5월 결국 전남 화순군 능주헌병대에 붙잡혔고,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 후유증으로 1920년 4월 1일 대구 감옥에서 병사하였다. 2007년 전남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마을 입구에 충혼탑을 세워 공훈을 기리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대한광복단 추모탑(대구 중구) [판형1]

 

⋮박이준⋮

|참고문헌|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19. 3. 5 ; 『독립신문』 ; 화순군 편, 『화순군지』, 2012.
  • 대한광복단 추모탑(대구 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