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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두옥 金斗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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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두옥
한자명 金斗玉
본 관  
이 명  
출신지 경상남도 통영(統營)
생몰년월일 1895. 11. 7 ~ 1935. 12. 15
운동계열 임시정부
관련 단체 임시정부, 조선민족대동단
관련 사건 제2차 독립만세운동
주요 활동 1919년 통영 만세시위 참가,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 1920년 제2차 독립만세운동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0)

1895년 11월 7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통영면(統營面) 항남리(港南里)에서 태어났다. 1917년 진주공립농업학교(晉州公立農業學校)를 졸업하고, 통영의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 조수(助手)로 잠시 근무하였다. 1918년 부산진공립보통학교(釜山鎭公立普通學校) 교사로 근무하다가 같은 해 12월 사직하였다.

1919년 통영 지방에서는 외지에서 유학하던 학생들이 귀향하여 만세 시위 운동을 준비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강윤조(姜潤祚) 등과 밀의한 뒤 통영 군민과 광부들을 동원하여 3월 15일 만세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1919년 (음)8월 김두현(金斗鉉)을 만나 독립운동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잠시 활동하였다. 귀국하여 오재영(吳哉泳)이 제공한 임시정부 발행의 사령서(辭令書)를 교부받은 뒤, 자신의 재산 1,000원과 박상건(朴相健) 등의 동지들로부터 모금한 400원 등 1,400원을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뿐만 아니라 중앙학림(中央學林)에 재학하는 승려 박민오(朴玟悟) 등의 전보를 받고 김두현과 함께 부산 영남여관(嶺南旅館)에서 11월 1일 대동단(大同團)이 계획하고 있는 제2차 독립 만세 운동을 선동하라는 「위임장」과 『독립신문』 25부, 「경고문」 10부 등을 받았다. 그리고 경남 양산(梁山)의 박상건(朴商鍵)과 협의하여 강우석(姜佑錫)·박만선(朴萬善)에게 독립운동 관련 문서를 배포하고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1921년 5월 경상남도경찰부와 진주경찰서에서 동지 13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1921년 5월 30일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기소되어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참고문헌|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21.8.2 ; 『독립신문』 1921.5.25, 1921.5.31 ; 『동아일보』 1921. 5.10, 1921.5.14, 1921.6.3 ; 김정명, 『조선독립운동』 제1권 분책, 1969 ; 국회도서관, 『한국민족운동사료』 1, 1992, ; 장석흥, 「조선민족대동단연구」,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3집, 1989.
  • 김두옥 프로필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