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명 金得鳴 |
한글명 | 김득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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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金得鳴 |
본 관 | |
이 명 | |
출신지 | 황해도 봉산(鳳山) |
생몰년월일 | 1923. 9. 11 ~ 2009. 3. 4 |
운동계열 | 광복군 |
관련 단체 | |
관련 사건 | 광복군 1지대 |
주요 활동 | 일제에 강제 징병되어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군을 탈출하여 광복군 제1지대에 입대, 지대본부 요원으로 활동 중 광복을 맞아 귀국 |
포상훈격(연도) | 애족장(1991) |
1923년 9월 11일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사리원읍(沙里院邑) 북리(北里)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초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중국 상하이(上海) 지구로 배치되어 근무하였다. 1944년 4월 일본을 위한 죽음은 무의미함을 깨닫고 부대를 탈출하여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는 쓰촨성(四川省) 충칭(重慶)으로 갔다. 이때 광복군 총사령부는 한인 청년과 일본 군대를 탈출한 한인 사병들을 보충대에 편입시켰다. 자대 배치 전 대기하던 보충대는 토교대(土橋隊)라고 불렸는데, 충칭 교외 토교라는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최용덕(崔用德) 장군이 대장을 맡은 토교대는 모두 3기가 운영되었다. 1944년 3~4월경에 편성된 제1기에 동료 32명과 함께 편입되었다. 3개 반으로 나뉜 토교대 2반에 편성되어 약 3개월의 교육 훈련 과정을 마쳤다. 교육과정을 마친 후 충칭의 광복군 제1지대에 들어가 지대본부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2009년 3월 4일 별세하였으며, 국립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