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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강경진 姜景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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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강경진
한자명 姜景鎭
본 관  
이 명  
출신지 전라북도 남원(南原)
생몰년월일 1893. 5. 4 ~ 1940. 12. 8
운동계열 국내항일
관련 단체 대동단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919년 대동단 남원지부에서 군자금 모집과 독립문서 배포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0)

1893년 5월 4일 전라북도 남원군(南原郡) 사매면(巳梅面) 오신리(梧新里)에서 태어났다.

의친왕 망명계획 사건에 대한 보도(『매일신보』 1920.6.30) [판형2]

1919년 7월 서울에서 김재구(金在九)로부터 한국의 독립을 위해 대동단(大同團)이 조직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의 권유로 대동단에 가입하였다. 대동단의 정식 명칭은 조선민족대동단으로 1919년 김가진(金嘉鎭)·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주도하여 만들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귀족·관료·유림·학생 등 각계각층에서 수만 명의 단원을 포섭하여 전국 단위로 조직하려던 비밀 독립운동 단체다.

대동단 가입 후 김재구와 함께 서울로 가서 대동단장 전협과 만났다. 이후 남원지부 임원들에게 활동 자금 10원씩을 걷어 총 200원을 서울의 대동단 본부에 전달하였다. 이 과정에서 윤용주(尹龍周)로부터 『조선독립신문(朝鮮獨立新聞)』 4매, ‘독립운동에 진력하라’는 내용의 경고문 20매를 수령하여 귀향하였다. 이후 김재구·한태현(韓泰鉉) 등과 남원을 중심으로 조직 확대에 힘을 쏟는 한편, 대동단 본부로부터 받은 각종 선전물을 배포하면서 독립 의식을 고취하였다. 이때 한태현을 비롯한 남원지부 김진명(金振明)·이범위(李範慰)·형순권(邢舜權)·형갑수(邢甲洙) 등과 활동하면서 남원의 유지들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고 대동단 전북지부 결성 등을 위해 헌신하였다.

이러한 활동 중, 1919년 11월 대동단 본부가 주도한 의친왕(義親王)의 상하이(上海) 망명 계획이 발각됨으로써 대동단 조직의 전모가 드러났고 대동단 전라북도 지단도 자연 발각되었다. 이로 인하여 1920년 3월 15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항기⋮

|참고문헌|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20.4.15 ; 『동아일보』 1920.6.30 ; 『매일신보』 1920.6.30.
  • 대동단사건 예심결정서(『동아일보』 1920.6.30. 3이면)
  • 의친왕 망명계획 사건에 대한 보도(『매일신보』 1920.6.30)
  • 의친왕 망명계획 사건에 대한 보도(『매일신보』 192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