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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두갑 金斗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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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두갑
한자명 金斗甲
본 관  
이 명  
출신지 경상북도 순흥(順興)
생몰년월일 미상 ~ 1909. 11. 17
운동계열 의병
관련 단체 이강년 의병부대, 김상태 의병부대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907년 이강년 의병부대 참여, 1908년 김상태 의병부대 참여
포상훈격(연도) 애국장(2001)

경상북도 순흥군(順興郡) 죽면(竹面) 덕현리(德峴里)에서 태어났다. 생년은 미상이다. 『독립유공자공훈록』과 공훈전자사료관의 「독립운동가공적조서」에 따르면 출신지를 ‘덕연(德硯)’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충청북도 경찰부장 반도 에지로坂東榮次郞가 내부 경무국장 마츠이 시게로루(松井茂)에게 보낸 문서 「폭도취포(暴徒就捕)에 관한 건 보고」에서 덕현리의 ‘현(峴)’자를 반도 에지로가 ‘연(硯)’으로 오기한 것을 참고했기 때문이다.

1907년 이강년 의병부대에 덕현리 출신 김봉정(金鳳政)·김치순(金致順)·김수갑(金守甲)·윤영석(尹永錫)·윤우석(尹遇錫)·윤영구(尹永九)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이강년은 일제에 의해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이 이루어지자 분개하며 다시 의거하였다. 충북 제천의 천남(泉南) 전투에서의 승리를 시작으로 충청에서부터 강원과 경상북도 북부에 걸친 일대를 돌아다니며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1908년 7월 2일 이강년은 청풍 까치성(鵲城)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잡혀 같은 해 10월 13일 사망하였다. 이후 이강년 의병부대에서 중군장(中軍將)으로 활동하던 김상태(金尙台)의 휘하로 들어가 의병 항쟁을 계속하였다. 김상태는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편성하여 휘하에 정경태(鄭敬泰)·백남규(白南奎)·금달연(琴達淵)·최성천(崔聖天) 등을 두고 경북 북부의 소백산을 근거지로 풍기·순흥·영주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일제 문서에 기록된 김두갑(1909.11.24) [판형3]

1909년 11월 17일 제천경찰서와 영천수비대의 공동수색대에 붙잡혔다. 이강년 의병부대에서부터 함께 활동하던 윤영석·윤우석·윤영구·김수갑·김봉정·김치순 등과 압송되던 중, 도주를 시도하다 수비대에 즉결 총살당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참고문헌|

「忠北警發秘 제1229-1호, 暴徒就捕에 關한 件 報告」, 1909.11.24, 坂東榮次郞(忠淸北道 警察部長),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 자료』 16(의병편Ⅸ), ; 구완회, 『韓末의 堤川義兵』, 집문당, 1997 ; 구완회, 「단양 지역의 한말 의병항쟁」, 『중원문화연구』 13, 2010.
  • 일제 문서에 기록된 김두갑(1909.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