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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윤실 金允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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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윤실
한자명 金允實
본 관  
이 명  
출신지 전라북도 옥구(沃溝)
생몰년월일 1886. 10. 6 ~ 1963. 2. 13
운동계열 3.1운동
관련 단체  
관련 사건 군산부 만세시위
주요 활동 1919년 3월 5일 군산부 만세시위 주도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0)

1886년 10월 6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개정면(開井面) 구암리(龜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군산에 위치한 영명학교(永明學校)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3월 5일 전개된 군산부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5일에 일어난 군산의 만세시위는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이 주도하였다. 2월 28일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인 김병수(金炳洙)가 독립선언서를 갖고 군산으로 내려왔다. 김병수는 영명학교 교사 이두열(李斗悅)·김수영(金洙榮)·박연세(朴淵世)·고석주(高錫柱)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모의하였다. 거사일은 군산 장날인 3월 6일로 결정하였다.

 

만세시위 계획에 동참하여 3월 1일 동료 교사들과 함께 학교, 교회, 병원 직원과 학생에게 참여를 권유하였다. 또한 같은 날 영명학교 학생 양기철(梁基哲)에게 종이 2,000장을 구입하도록 하여 김병수가 준 독립선언서 원본을 복사하였다.

 

거사 전날인 3월 5일 계획이 새어나가 주도자인 교사 박연세·이두열·김수영 등이 군산경찰서로 잡혀가자, 동료 교사를 비롯한 학생들과 긴급회의를 열어 즉각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여러 교사,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치며 군산 시내로 앞장서 나아갔다. 행진하는 과정에서 보통학교 학생들, 교회 신도들, 기독교의 멜본딘 여학교 학생들이 합류하였다. 이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이끌었다. 시위대 일부는 교사들이 잡혀간 군산경찰서 앞에서 교사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500여 명의 시위대는 일본 헌병대에 의해 해산되었다. 이 날 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붙잡혔다.

 

1920년 9월 18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보안법,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했으나, 그 해 10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판결문(대구복심법원, 1920. 10. 19) [판형1]

 

⋮고태우⋮

|참고문헌|

「판결문」, 1920.10.19, 대구복심법원 ; 「수형인명부」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2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3권·제9권, 1971·1977.
  • 판결문(대구복심법원, 1920. 10. 19)
  • 판결문(대구복심법원, 1920.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