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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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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묵 金元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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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원묵
한자명 金元默
본 관 김녕(金寧)
이 명 자: 춘시(春時), 호: 송당(松堂)
출신지 충청남도 예산(禮山)
생몰년월일 1891. 2. 3 ~ 1972. 2. 26
운동계열 국내항일
관련 단체  
관련 사건 광복회 사건
주요 활동 1917년 광복회 충청도지부 가입, 광복회 거점인 인천 미곡상에서 비밀결사 활동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0)

1891년 2월 3일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신흥리에서 아버지 김상순(金相淳)과 후처 한산 이씨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춘시(春時), 호는 송당(松堂)이다. 영해 박씨와 결혼하여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1917년 광복회 충청도지부에서 활동하였다.

 

1917년 (음)6월 광복회 충청도지부가 설치되고, 김한종이 충청도지부장이 되었다. 그 후 김한종이 광복회의 목적을 이야기하고 권유하자 여기에 찬성하고 가입하였다.

 

1917년 12월 김한종이 전 면장을 옥사시키고 광복회에 찬성하지 않는 아산 도고면장 박용하를 처단 대상으로 정하였다. 이어서 장두환과 논의하여 (음)12월 11일 천안역 부근 주막에서 김경태와 임세규에게 암살을 명하였고 장두환은 권총 2자루를 제공하였다. (음)12월 12일 밤 김경태와 임세규는 박용하를 권총으로 죽인 뒤 김한종 집으로 귀환하였다. 암살 시 사용한 권총을 김재철이 맡았다가 (음)12월 13일 인계받고 자택에 숨겨두었다.

 

1918년 1월 하순 김한종과 2월 초 충청도지부원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2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총포화약류취체령’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예심 결정 결과 보도(『매일신보』 1919. 2. 16) [판형1]

 

⋮조준희⋮

|참고문헌|

「형사사건부」, 공주지방법원검사국, 1918 ; 『김녕김씨대동보』 16, 김녕김씨대동보편찬위원회, 1990 ; 『광복회100주년자료집』 Ⅰ, 대한광복회총사령 고헌박상진의사추모사업회, 2014 ; 이성우, 「대한광복회 충청도지부의 결성과 활동」, 충남대 석사학위논문, 1999.
  • 예심 결정 결과 보도(『매일신보』 1919. 2. 16)
  • 예심 결정 결과 보도(『매일신보』 1919.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