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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영학 金永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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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영학
한자명 金永學
본 관  
이 명  
출신지 함경북도 명천(明川)
생몰년월일 1871. 7. 2 ~ 1944. 7. 13
운동계열 만주방면
관련 단체 연변교민회, 간민회, 조선국민의회, 광복단, 대한국민회
관련 사건  
주요 활동 연변교민회 간부·간민회 의사원·조선국민의회 회장, 광복단 조직, 대한국민회 참여, 3.13 만세운동에서 독립선언 포고문 낭독, 1928년 동만청총회관 건축후원회장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0)

1871년 7월 2일 함경북도 명천군(明川郡) 서면(西面) 삼향동(三鄕洞)에서 태어났다. 1911년 중국의 북간도로 망명하여 옌지(延吉)에서 거주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북간도 지역 한국인들은 경술국치 이전인 1910년 3월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국자가(局子街)에 간민교육회(墾民敎育會)를 설립하였다. 간민교육회는 중국 지방 당국의 인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설립된 첫 북간도 한국인 조직이었다. 신해혁명(辛亥革命) 이후 1913년 4월 26일 간민교육회는 ‘민국행정의 일부기관’을 자처하는 간민회(墾民會)로 재편되었다. 이 때 의사원(議事員)으로 활동하였다. 간민회는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옌지현·허룽현(和龍縣)·왕칭현(汪淸縣)을 아우르는 조직이었다. 간민회 조직원들은 중국의 지방 관원들과 친분을 유지하거나 회원 스스로 관원이 되어 지역민들의 복리를 도모하였다. 이때 지방정부의 관원으로 근무하였다. 이후 일본 당국의 압력과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지방자치기관 혁파 방침에 따라 간민회는 1914년 3월 12일 해체되었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전 2월 18일 지린성 옌지현 춘양향(春陽鄕) 하마탕(蛤蟆塘)에서는 조선독립운동의사부(朝鮮獨立運動議事部)가 결성되었다. 이 단체는 3월 13일 조선독립의사부와 조선독립운동기성회(朝鮮獨立運動期成會)로 개편되었는데, 이 기성회의 인물 중 대부분이 간민회 지도자 출신이었다. 더불어 비슷한 시기 옌지현 국자가에서 조선국민의회(朝鮮國民議會)가 설립될 때 이 조직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1919년 2월 18일과 20일 국자가 하장리(下場里)에서 독립운동가 32명과 함께 광복단(光復團)을 조직하고 독립선언을 계획하였다. 또한 3월 13일 지린성 룽진촌(龍井村)의 서전(瑞甸) 평야에서 9,000명의 한국인들이 모여 만세 시위를 전개할 때 독립선언 포고문을 낭독하였다. 같은 달 훈춘현(琿春縣) 나자구(羅子溝) 삼도하자(三道河子)에서 독립선언서를 배부하였고, 3월 28일 한국인 약 1,000명을 모아 독립선언 축하회를 개최하여 조국 독립에 대해 연설하였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조선독립운동기성회는 단체의 이름을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로 변경하였다. 대한국민회에 북간도 지역의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이 합류하였고, 임시정부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당시 대한국민회의 지도자로도 활약하였다. 이후 임시정부의 지시에 따라 무기 구매를 위해 러시아에 파견되었다. 1919년 12월에는 임시정부의 명령에 따라 국제연맹 회의에 송부할 「조선독립청원서」 의 작성을 위해 재해삼위국민회(在海蔘威國民會)를 중심으로 ‘조선인’ 백만인 서명운동에도 나섰다.

 

1926년에는 룽징촌에 사회주의 청년단체인 동만청년총연맹(東滿靑年總聯盟)이 1월에, 10월에는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만주총국(滿洲總局) 동만구역국(東滿區域局)이 설치되었다. 이들은 1928년 1월 만주총국 산하의 동만청년총동맹(東滿靑年總同盟)으로 재편되었는데, 2월 4일 동만청총회관 건축후원회가 조직될 때 회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제2차 간도공산당 사건 때 약 70여 명의 한인들과 함께 경성으로 호송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8년 12월 2일 불기소로 석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간도공산당 기소 관련 보도(『매일신보』 1928. 12. 4) [판형1]

 

 

⋮김대현⋮

|참고문헌|

김정명 편, 『조선독립운동』 2·3, 東京: 原書房, 1967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3권·제5권, 1971·1973 ; 『동아일보』 1928. 2. 13, 12. 4 ; 최봉룡, 「북간도 한인자치운동의 효시 : 간만회의 시말과 그 성격」, 『한민족연구』 7, 한국민족학회, 2009 ; 황민호, 「1920년대 재만한인 사회주의운동의 동향과 동만청년총연맹」, 『한국민족운동사연구』 40,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04 ; 오천석, 「대한국민회를 논함」, 『역사와 세계』 44, 효원사학회, 2013 ; 김경준, 「북간도 대한국민회군과 안무(1883~1924)의 독립운동」,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18.
  • 간도공산당 기소 관련 보도(『매일신보』 1928. 12. 4)
  • 간도공산당 기소 관련 보도(『매일신보』 1928.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