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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영오 金永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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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영오
한자명 金永五
본 관  
이 명  
출신지 경기도 평택(平澤)
생몰년월일 1920. 2. 9 ~ 1993. 6. 26
운동계열 광복군
관련 단체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944년 3월 베이징에서 해동학우 조직 후 항일운동, 중국중앙군 유격대에서 활동, 11월 광복군 제3지대 입대, 1945년 8월 베이징지구 군사특파단 정보참모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1)

1920년 2월 9일 경기도 평택군(平澤郡) 청북면(靑北面) 후사리(後寺里)에서 태어났다. 중국으로 망명하였다가 1944년부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운동을 펼쳤다.

 

1944년 3월부터 중국 화베이(華北)지구 특파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김광언(金光彦)의 권유를 받아 50여 명의 동지와 함께 베이핑(北平, 현 베이징)에서 해동학우(海東學寓)라는 비밀단체를 조직하고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중국 중앙군 유격대에 들어가 활동하기도 하였다.

 

1944년 11월경 김광언의 도움으로 광복군 제3지대에 정식 입대하여 베이핑·텐진(北平)·(天津)지구의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보직을 바꿔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에 있는 제3지대 본부의 군수과장을 맡아 지대원들의 군수품 확보 와 조달에 노력하였다. 제3지대 본부는 이후 싼타지(三塔集)-푸양성(阜陽城)-지우리꺼우(九里溝)-류싸이(劉塞) 등지로 4차례 이전하였다.

 

1945년 8월 광복 후 베이핑지구 군사특파단 정보참모에 선발되어 단원들과 함께 중국인들로부터 교포들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질서를 유지해 귀환토록 하는 임무를 맡았다. 또한 일본군 부대 내에 억류되어 있는 한인 사병들을 인수하여 광복군에 편성하는 임무도 수행하였다.

 

1945년 10월 베이핑지구 특파단은 광복군 제2지대의 판사처와 통폐합하여 화북한교선무단(華北韓僑宣撫團)으로 개편되었다. 선무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광(李光)을 선무단 단장으로 임명하고 광복군 총사령부의 참모처장 최용덕(崔用德)과 베이핑에서 활동하던 조병걸 등으로 보좌케 하였다. 그 후 총사령부에서는 선무단을 ‘광복군 총사령부 화북지역판사처’로 다시 개편하고 최용덕을 처장에 임명하였다. 또한 ‘직할대대’를 ‘북경잠편지대’로 격상하여 처장이 잠편지대장을 겸임하고 참모에 제2지대 유해준(兪海濬), 제3지대의 김광언을 임명하였다. 이들은 중국 동북지방 일대에 흩어져 있던 동포들을 중국 정부 및 미군과 협상하여 팔로군(八路軍)으로부터 보호하였다. 임시정부가 환국한 뒤에는 중국 정부와의 연락 업무 및 교포 송환문제 등을 처리하였다.

 

1993년 6월 26일 사망하였고,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푸양 한국광복군 제3지대 훈련모습        [판형1]

 

⋮여성구⋮

|참고문헌|

김승학, 『한국독립사』 하, 독립문화사, 1965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6권, 1975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9권, 1977 ; 김문택, 『새벽으로 가는 길』, 인하대학교 출판부, 1995 ; 김광재, 『한국광복군』,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7.
  • 푸양 한국광복군 제3지대 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