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실 金英實 |
한글명 | 김영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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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金英實 |
본 관 | |
이 명 | |
출신지 | 평안남도 평양(平壤) |
생몰년월일 | 미상 ~ 1945. 10 |
운동계열 | 광복군 |
관련 단체 | 한국광복군 |
관련 사건 | |
주요 활동 | 광복군 제3지대 및 광복군총사령부 주호판사처에서 활동 |
포상훈격(연도) | 애족장(1990) |
평안남도 평양(平壤) 출신이다.
1943년 중국 쉬저우(徐州)에서 요리집 기생으로 일하다가 일본군에 징집된 학병들을 탈출시키는데 도움을 주면서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중국으로 망명한 시기는 알 수 없다. 1943년 당시 중국 서주의 요리집 희락관(喜樂館)에서 기생으로 일하고 있었다. 희락관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만나 독립의식이 고취되었고, 학병으로 중국전선에 끌려온 한인을 망명시켜 광복군에 입대하는 일을 돕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광복군에 입대하여 광복군 제3지대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복 후 1945년 10월 초 제3지대장 김학규(金學奎)가 푸양에서 상하이(上海)로 가 광복군총사령부 주호판사처(駐滬辦事處)를 설치하고 판사처 처장을 맡았다. 주호판사처는 교포들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질서를 유지하여 장차 귀국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때 지대장을 따라 상하이로 가 김우전(金祐銓)·박승헌(朴承憲)·오광심(吳光心)등과 함께 주호판사처원이 되었다. 그러나 업무를 수행하던 중 1945년 10월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