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근 金順根 |
한글명 | 김순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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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金順根 |
본 관 | |
이 명 | |
출신지 | 평안북도 선천(宣川) |
생몰년월일 | 1925. 3. 1 ~ 1945 |
운동계열 | 광복군 |
관련 단체 | |
관련 사건 | |
주요 활동 | 광복군 제3지대원으로 밀정색출공작 중 체포되자 옥중 자결 |
포상훈격(연도) | 애족장(1990) |
1925년 3월 1일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에서 태어났다.
1944년 3월부터 한국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金學奎)로부터 화베이(華北) 지구 공작원으로 임명되어 활동 중이던 김광언(金光彦)의 권유로 광복군 입대를 결심하였다. 그해 10월경 3지대 공작원 윤창호(尹昌浩)의 안내에 따라 이정수(李延秀)·이윤하(李允夏)·홍순명(洪淳明)·김영진(金永鎭)·김의명(金義明)·선우석(鮮于碩) 등과 함께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으로 이동해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입대 후 김광언 등과 함께 베이징(北京) 지역에서 한인 청년과 일본군 내의 한인 사병 모집 활동을 하였다.
한국광복군 제3지대 성립 경축 전례 기념(1945.6.30) |
1944년 말 공작원 이정수·이윤하 등과 함께 베이징 지구에서 친일분자에 대한 회유 공작인 이른바 ‘반정(反正) 공작’을 전개하는 한편, 일본군 장교와 사병 2명을 처단하기도 하였다. 1945년 초,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은신하던 중 일본 밀정 백(白)모 여인의 밀고로 일제 경찰에게 기습 포위당하자, 총격을 벌였으나 실탄이 떨어져 체포되었다. 수감 중 혹독한 고문에 못 이겨 혹시라도 동지들에게 화를 끼칠 것을 우려하여 옥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지들이 유해를 수습하였다가 광복 후 귀국하면서 유해를 봉안해 왔다. 그러나 바로 안장되지 못하고 1967년 서울 수유리 순국선열묘역 내 마련된 유족이 없는 광복군 18위 합동 묘소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