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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성갑 金成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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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성갑
한자명 金成甲
본 관  
이 명  
출신지 강원도 강릉(江陵)
생몰년월일 1924. 4. 7 ~ 2001. 6. 24
운동계열 광복군
관련 단체 광복군 2지대
관련 사건  
주요 활동 OSS 특수훈련 후 국내정진군 강원도반 제2조원으로 활동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0)

1924년 4월 7일 강원도 강릉군(江陵郡) 옥계면(玉溪面) 도직리(道直里)에서 태어났다.

중국으로 건너간 경위는 미상이며,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해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 5월 한미군사합작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 전략 사무국) 특수훈련에 참여하였다. 한미연합작전은 1945년 초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미국에서 별도로 구상되고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는 미국과 연계하여 한국과 일본 본토에서 지하공작을 전개한 뒤 미국과 연합하여 한국으로 진입한다는 「한국광복군건군반작전계획(韓國光復軍建軍反作戰計劃)」을 수립하고 OSS와 교섭을 추진하였다. 미군 역시 광복군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광복군과 연합작전(독수리작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OSS특수훈련은 광복군 제2지대와 제3지대에서 실시되었다. 제2지대는 광복군 중 정예대원 125명을 선발한 뒤 기수를 나누어 훈련을 실시하였다. 이때 1기로 선발되어 산시성(陝西省) 두취(杜曲) 훈련소에서 12주(1945.5.11~8.4) 동안 훈련과 교육을 받았다. 무전반과 정보·파괴반 두 반으로 나누어 실시된 교육에서 정보·파괴반에 편성되어 국내에 침투하여 군 시설 파괴, 쿠데타 감행, 게릴라 작전 등 특수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받았다. 1기생 50명 중 훈련을 마친 대원은 모두 38명이었다. OSS특수훈련에 참여했던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조국 광복을 이루겠다는 염원으로 매일 8시간의 고된 훈련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 OSS부대와 국내 진입작전을 시도한 독수리작전 요원들(1945.8.19) [판형2]

1945년 8월 4일, OSS특수훈련을 마친 대원과 기타 지대원을 중심으로 국내 침투 작전을 수행할 국내정진군을 편성하였다. 강원도 출신이었기에 국내정진군 제3지구(함경, 강원, 경상도) 강원도반 2조에 선발되었다. 제3지구 대장은 노복선, 강원도반 반장은 김준엽(金俊燁)이었다. 고철호(高澈浩, 무전반), 홍재원(洪在源, 정보·파괴반) 등과 함께 2조에 편성된 것이다. 이들의 임무는 미국 잠수함으로 국내에 침투하여 국내 거점을 마련하고 각종 공작과 인심을 선동하며, OSS 측과 연락하여 무기를 비행기로 운반하여 적 후방에서 무장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국내에 침투하여 작전을 수행하기만을 기다리다가 8월 15일 일본의 패망으로 작전은 실행되지 못하였다.

광복 이후 1946년 6월 3일 광복군 500여 명과 함께 인천항을 통해 귀환하였다. 2001년 6월 24일 향년 78세에 별세하였으며, 묘소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에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여성구⋮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6, 1975 ; 강릉3·1독립만세운동기념탑건립추진위원회 편, 『강릉지방 3·1독립만세운동사』, 원영출판사, 1999 ; 김광재, 『한국광복군』,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7 ; 강원도사편찬위원회 편, 『강원도사』, 2014 ; 金祐銓, 「韓國光復軍과 美國OSS의 共同 作戰에 관한 硏究」, 『수촌박영석교수화갑기념 한민족독립운동사논총』, 탐구당, 1992.
  • 미국 OSS부대와 국내 진입작전을 시도한 독수리작전 요원들(1945.8.19)
  • 김성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