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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덕봉 金德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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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덕봉
한자명 金德峰
본 관  
이 명  
출신지 경상남도 양산(梁山)
생몰년월일 1898. 12. 12 ~ 1962. 12. 20
운동계열 국내항일
관련 단체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선민족대동단
관련 사건 제2차 독립만세운동 기도 사건
주요 활동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자금 모집, 제2차 독립만세운동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0)

1898년 12월 12일 경상남도 양산군(梁山郡) 양산면(梁山面) 남부리(南部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 경남 양산에서 잡화상(雜貨商)을 경영하였다. 1919년 9월 경남 하동(河東)의 김두현(金斗鉉)을 비롯한 통영의 김두옥(金斗玉), 양산의 김봉길(金鳳吉) 등과 함께 각지의 부호들로부터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송부할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우선 김두현 등과 함께 1919년 9월 앞면에는 태극기와 ‘독립기념(獨立紀念)’, 뒷면에는 ‘민국원년(民國元年)’을 조각한 은화 50전 크기의 은(銀) ‘메달’을 서울의 금은세공업자 박경선(朴慶善)에게 의뢰하여 제작하였다. 그리고 김두현 등과 함께 고광욱(高光郁)과 이근이(李根伊)를 앞세워 경남 하동군 북천면(北川面) 방화리(芳華里)의 부호 이도식(李道植)에게 군자금 1,000원을 3일 내로 하동까지 지참하여 오도록 하였다. 통영에 있는 김두옥과 함께 부산의 오재영(吳哉泳)으로부터 임시정부 명의의 「사령서(辭令書)」와 「유고문(諭告文)」을 받아 군자금 모집에 착수하였다.

같은 해 9월 중앙학림(中央學林)에 재학하던 승려 박민오(朴玟悟)의 전보를 받고 부산에 있는 영남여관(嶺南旅館)에서 11월 1일 대동단(大同團)이 계획한 ‘제2차 독립 만세운동第2次獨立萬歲運動’을 선동하라는 위임장과 『독립신문(獨立新聞)』 25부, 경고문(警告文) 10부 등을 받았다. 양산의 박상건(朴商鍵)과 협의하여 강우석(姜佑錫)과 박만선(朴萬善)에게 독립운동 관련 문서를 배포하고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1921년 5월 경상남도경찰부와 진주경찰서에서 동지 13명과 함께 붙잡혔다. 1921년 5월 30일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기소되어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1922년 9월부터 동아일보사 양산분국(梁山分局)의 기자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참고문헌|

대구복심법원, 「판결문」, 1921.8.2 ; 『동아일보』 1921.5.14, 6.21, 1922.9.28 ; 『독립신문』 1921.5.31 ; 김정명, 『조선독립운동』 제1권 분책, 1969 ; 국회도서관, 『한국민족운동사료』 1, 1992 ; 장석흥, 「조선민족대동단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3집,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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