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글자크기조절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득하 金得夏

Profile Image
기본정보
한글명 김득하
한자명 金得夏
본 관  
이 명  
출신지 평안북도 용천(龍川)
생몰년월일 1892. 6. 5 ~ 1966. 9. 26
운동계열 국내항일
관련 단체 보합단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920년 보합단 가입 군자금 모집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0)

1892년 6월 5일 평안북도 용천군(龍川郡) 읍동면(邑東面) 양책동(良策洞)에서 태어났다. 3년간 한문 공부를 한 다음, 양책동에 있는 의영학교(義英學校)에서 3년간 소학교 과정을 수학하였다.

1920년 가을 박중식(朴仲植) 등의 권유로 보합단(普合團)에 가입하였다. 당시 부모와 떨어져 목재상을 운영하고 있었고, 동향인 박중식이 목재상을 출입하며 노동과 매매를 중개하였다. (음)8월말 경 박중식이 철산군(鐵山郡) 서림면(西林面) 일신동(日新洞)의 이만일(李萬一) 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러, 보합단 가입을 권유하였다. (음)9월 남시(南市)의 시장에서 역시 보합단원인 박초식(朴初植)으로부터 광봉동에 사는 보합단원 김승옥(金昇玉)을 소개받았고, 그로부터 재차 가입을 권유받고 보합단 활동에 합류하였다. 이후 친일파·밀정 등 일제 주구 처단을 위한 암살대를 조직하고, 박운죽(朴雲竹)·김승옥·이만일 등을 단원으로 가입시키는 등 평북 일대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1920년 12월 단원 김도원(金道源)이 서울 운니동(雲泥洞)에서 군자금 모집 중 일제 경찰 2명을 사살하고 붙잡힌 사건이 일어났다. 이 일로 직접 참가한 단원 이외에도 보합단원 20명 이상이 붙잡혔고, 각 단원들 집에 은닉한 무기와 폭탄·탄약 등도 모두 압수당했다.

1921년 7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강도·가택침입 등의 죄목으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걸순⋮

|참고문헌|

「高警 第33853號, 「密結社大朝鮮獨立普合團檢擧」, 1920.11.3, 『不逞團關係雜件 朝鮮人ノ部 在內地 十三』,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高警 第40728號, 秘密結社 獨立普合團 檢擧」, 1921.1.11, 『大正8年乃至同10年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 共7冊 其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高警 第501號, 秘密結社 獨立普合團 檢擧 續報」, 1921.1.19, 『大正8年乃至同10年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 共7冊 其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金得夏 신문조서」, 경성지방법원, 1920.4.22(국사편찬위원회 편,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34, 1998) ; 「공판시말서」 제2회, 경성지방법원, 1920.11.24(국사편찬위원회 편,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35, 1998) ; 『매일신보』 1921.7.23, 11.23, 1922.2.5·26 ; 『동아일보』 1921.7.24, 9.18, 11.10·26, 1922.2.5·26 ; 『경향신문』 1963.2.23 ; 김승학 편, 『韓國獨立史』, 한국경제경영연구소, 1983 ; 박걸순, 「1920년대 초 국내 무장투쟁단체의 활동과 추이」, 『한국독립운동사연구』 3,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9.
  • 김득하(공훈전자사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