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글자크기조절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상보 金相保

Profile Image
기본정보
한글명 김상보
한자명 金相保
본 관  
이 명  
출신지 강원도 철원(鐵原)
생몰년월일 1881 ~ 미상
운동계열 3.1운동
관련 단체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919년 3월 12일 철원군 갈말면 만세시위 참가
포상훈격(연도) 대통령표창(2011)

1881년경 강원도 철원군(鐵原郡) 갈말면(葛末面) 문혜리(文惠里)에서 태어났다.

철원은 서울과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여 3월 1일 서울의 만세 시위 소식이 신속하게 전해졌다. 1919년 3월 1일 천도교 철원교구의 교훈(敎訓) 최병훈(崔炳勳)은 평강 천도교구실에서 독립선언서 200매를 받아 가져왔다. 최병훈은 3월 1일 철원면 관전리(官田里)에 있는 천도교구실에서 이석구(李錫九)와 협의한 후 이튿날인 일요일 예배 시간에 모인 천도교인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었다. 이와는 별도로 철원교구의 김현일은 평강면에 위치한 평강정거장에서 서울의 천도교중앙총부에서 파견한 안상덕(安商悳)로부터 독립선언서 10매를 전달받았다.

철원은 3월 3일 고종 장례식에 참가하여 만세 시위를 목격한 사람도 많아 만세 시위의 분위기는 일찍부터 형성되었다.

갈말면의 독립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2일 일어났다. 갈말면은 철원군의 동남쪽에 있고 김화군 서면(西面)과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날 시위는 문혜리(文惠里) 서당 훈장 신성규(申聖奎)와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학생 김칠룡(金七龍)이 모의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문혜리에 사는 김학길(金學吉)·전사진(全士進)·김경삼(金敬三)·김순복(金順福) 등을 독립 만세 시위 준비에 참가시켰다. 이때 준비 모임에 참가하였다. 또한 내대리(內垈里)의 임낙호(任洛鎬), 동막리(東幕里)의 윤호병(尹浩炳), 토성리의 황철성(黃徹性)이 시위 준비 모임에 합류하였다. 시위 주도자들은 각 마을에서 집집마다 한 사람씩 참가하도록 연락하여 토성리·동막리·내대리·도창리(道昌里) 주민은 김화헌병분견소의 청양리(淸陽里) 헌병파견소가 있는 지경(地境) 마을로 모이도록 하였다. 문혜리와 군탄리(軍炭里) 주민들은 면사무소가 있는 어음제로 모이도록 하였다.

3월 12일 토성리·동막리·내대리·도창리 주민들이 청양리 헌병파견소가 있는 지경 마을에 결집하였다. 오후 1시경 임낙호와 윤호병이 앞장서는 가운데 8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태극기를 높이 세우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시위대는 갈말면 면사무소가 있는 문혜리로 행진하였다. 지경리에서 시위를 끝낸 시위대가 태극기를 높이 들고 문혜리에 도착하자 문혜리 주민도 시위에 가담하였다. 면장은 물론 면사무소 직원 모두 이미 도망가고 없었다. 시위대는 면사무소 부근에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임낙호와 윤호병은 헌병주재소 앞 시위를 지휘하다가 체포되었다. 이후에는 전사진·김경삼·김학길·김순복 등이 시위대를 지휘하였다. 어두워지자 숨어 있던 면장 황희수(黃熙秀)가 나타나 시위대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1,0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대는 밤이 늦도록 만세를 부르다 면장의 권유로 해산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笞刑) 90도(度) 처분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2권, 1970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1 ; 광복회 강원도지부, 『강원도 항일독립운동사』 (Ⅰ)·(Ⅲ), 1991 ; 철원군, 『철원군지』, 1992 ; 강원일보사, 『강원항일사』, 2007 ; 김정인·이정은, 『국내 3·1운동Ⅰ』,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조동걸, 『3·1운동의 역사』, 역사공간, 2010 ; 강원도사편찬위원회, 『강원도사10-인물(상)-』, 2014.
  • 옛 갈말면사무소 앞 3·1운동 만세시위지(강원 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