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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광언 金光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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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광언
한자명 金光彦
본 관  
이 명  
출신지 평안북도 선천(宣川)
생몰년월일 1919. 3. 18 ~ 1993. 8. 5
운동계열 광복군
관련 단체 한국광복군
관련 사건  
주요 활동 한광복군 제3지대 화북지구 특파원, 한국광복군 초모공작 활동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0)

1919년 3월 18일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신부면(新府面) 안상동(安上洞)에서 태어났다.

1943년 3월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과 연결되어 1944년 3월 제3지대장 김학규(金學奎)로부터 이정수(李正秀)·이윤하(李允夏) 등과 화북지구 특파원으로 임명되었다. 제3지대장 김학규는 초모 공작의 조직 확대와 강화를 위하여 그를 비롯하여 이정수·홍순명(洪淳明)·김영진(金永振) 등에게 짧은 기간에 걸친 특별교육을 실시하였다. 지하활동 중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실전을 방불케 하는 고된 훈련을 받았다.

훈련을 마친 뒤 베이핑(北平)·톈진(天津)·상하이(上海)·쉬저우(徐州) 등지로 파견되어 초모 공작과 적군 정보를 수집하였다. 중국대학에 재학 중인 정기엽(鄭基燁)에게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화북지구 지하조직과 한국광복군 초모 공작을 하도록 지시하였다. 정기엽은 한국인 유학생을 포섭하여 한국광복군에 입대시켰으며, 후방에서 활동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이에 본부에서 김순근(金順根)·김규열(金圭洌)·김영진 등을 추가로 파견하였다.

이와 함께 명고옥(明古屋) 사건 연루자인 김지옥(金址玉)과 목연욱(睦然旭)·김옥경(金玉卿)·김환(金煥) 등을 포섭하였다. 윤창호(尹昌浩)와 접선하여 난징(南京) 중앙대학 재학생 김택주(金澤周)를 비롯하여 이차녕(李次寧)·이정호(李貞浩) 등을 모집하여 푸양(阜陽)으로 보냈다. 베이핑과 톈진 지역에서 윤창호·김국주(金國柱) 등과 함께 초모 활동을 전개하여 제3지대에 입대한 인원만도 120여 명에 달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

베이핑 잠편지대는 지대장 최용덕(崔用德)과 참모 김광언·이성가(李成佳)·유해준(兪海濬)·정민태(鄭民泰) 등으로 조직되었다. 적의 정보를 탐지하고 후방에서 가져온 한국광복군 기관지 『선봉(先鋒)』을 비밀리에 배포하기도 하였다. 항일의식 고취와 조국 광복에 대한 선전 활동도 강화하는 등 한중 연합 작전도 진행되었다.

광복 이후 일본군이 점령한 지역 내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생활 보호와 사회적인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제3지대는 군사특파단 파견 계획을 수립하고 중국군과 협의하여 12개 특파단을 구성하는 등 신속하게 활동에 들어갔다. 베이핑지구 특파단의 단장을 맡아 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특파단은 단장을 비롯하여 부단장 김지옥, 단원 김철수(金錣壽)·윤용호(尹龍虎)·김창석(金昌錫)·최동권(崔東權)·백순보(白淳甫)·함세만(咸世萬)·이선규(李善奎)·장국순(張國淳)·유해준 등이었다. 특파단은 중국군을 지원하는 한편 일본군에 배속된 한인 병사를 분리하여 한국광복군에 배속시켰다. 또한 베이핑교도소에 수감된 조동린(趙東麟)을 비롯한 10여 명의 대원과 수십 명의 교포 등도 석방시켰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김형목⋮

|참고문헌|

김승학, 『한국독립사』 하, 독립문화사, 1970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6, 1975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9, 1977 ; 국가보훈처 편, 『독립유공자공훈록』 5, 1988.
  • 김광언
  • 광복군 제3지대 1대대 대원들
  • 한국광복군 제3지대 1대대 열병식
  • 한국광복군 제3지대 성립 기념 사진(1945.6.30, 부양극장)
  • 한국광복군 제3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