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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경화 金慶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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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경화
한자명 金慶華
본 관  
이 명 김귀선(金貴先)
출신지 경상북도 문경(聞慶)
생몰년월일 1919. 7. 20 ~ 2007. 1. 21
운동계열 광복군
관련 단체 한국청년전지공작대, 한국광복군, 한국독립당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939년 12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 입대, 1941년 한국광복군 편입, 1943년 7월 창사 제9전구 사령부에 파견, 1944년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 제1분대 정치지도원, 한국독립당 입당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0)

1919년 7월 20일 경상북도 문경군(聞慶郡) 문경면(聞慶面) 마원리(馬院里, 현 문경시 문경읍 마원리)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김귀선(金貴先)이다.

1939년 12월 무정부주의 계열 청년들이 중심이 된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 전지공작대)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전지공작대는 중국 시안(西安)에서 중국군 제34집단군과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후쭝난(胡宗南) 사령관은 중앙전시간부훈련단 제4단 내에 한국청년훈련반(韓國靑年訓練班, 한청반)을 설치하여, 전지공작대 대원을 입교시켜 군사훈련을 받도록 하였다. 한청반은 중국군과 함께 3개월간의 훈련을 거친 후 중국군 소위로 임관되었다. 1940년 4월 전지공작대 대원으로 시안의 한청반에 입대하여 소정의 훈련을 마치고 중국군 소교(少校)로 임관하였다.

청년전지공작대 성립 1주년기념(1940.11.11) [판형4]

전지공작대는 1941년 1월 1일 광복군에 편입되어 제5지대가 되었다. 지대장 나월환(羅月煥) 암살사건 이후 종전의 광복군 제1·제2·제5지대를 통합하여 새롭게 제2지대로 개편하였다. 광복군 제2지대에서 복무하던 중, 1943년 7월 중국군사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광복군 총사령부의 명령으로 최문용(崔文鏞)·이병곤(이명 雷明) 등과 함께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에 있는 제9전구 사령부(사령관 : 薛岳 장군)로 파견되었다. 중국군에서는 일본군에 대한 정보 수집과 선전 활동을 위해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인원이 필요해 광복군 총사령부에서는 김경화 등 3명을 파견하였고, 이때 포함되었다.

제9전구에 배속된 후 중국군과 협동 작전으로 일본군과 직접적인 전투를 전개하기도 하였지만, 적 문서 번역·포로 심문·정보 수집 및 분석 등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창사에 도착한 후 제9전구 사령부 정치부에 소속되어, 정치부 주임 쉬중웨(徐中嶽) 중장의 휘하에서 한국어·일어 전단 표어 벽보 작성·포로 심문·적문서 번역·중국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일본어 대적 구호 교육 등을 수행하였다.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의 주요 작전은 대륙을 남북으로 관통하여 점령하는 것이었고, 이러한 작전은 베이징(北京)-정저우(鄭州)-한커우(漢口)-창사-헝양(衡陽)-광저우(廣州)를 연결하는 평한선(平漢線)-월한선(粤漢線)을 점거하는 작전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에 입당하여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5월부터 일본군은 중국 대륙을 종단하는 평한선 철도를 장악하려고 네 번째 ‘장사대회전(長沙大會戰)’을 전개하였다. 이 작전에는 일본군 8개 사단이라는 대규모 병력이 투입되었고, 광복군 공작대에서는 일본군의 점령 작전에 동원된 한인 사병들이 제9전구 지역으로 탈출하도록 유도하였다. 일본군을 탈출한 한인 사병은 최소한 100명 이상이었고, 8·15 광복 당시 제9전구에 집결된 인원은 170여 명이었다고 한다.

광복군총사령부에서는 중국군사위원회와 협의하여 탈출 한인 사병들을 중심으로 ‘제1지대 제3구대’를 편성하고 구대장으로 이병곤을 임명하였다. 중국군지원조(지휘장 유광위 소장) 제1분대에 편성되어, 정치지도원으로 활동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 당시 제1지대 제3구대는 3개 분대로 편제되었고, 1개 분대에는 3개 공작반이 편성되어 있었다. 1분대는 궤이동(桂東)에, 2분대와 3분대는 이춘(宜春)을 거점으로 공작을 전개하였다.

광복군으로 편성된 후에는 3개월간 교육과 훈련을 실시하려고 하였으나, 제9전구의 각 전선으로부터 광복군 공작요원을 파견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여, 교육과 훈련이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대원 대부분은 각 전선에 파견되어 공작요원으로 활동하던 중 8·15 광복을 맞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김병기⋮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6권, 1975 ; 한시준, 『한국광복군연구』, 일조각, 1993.
  • 중국군 9전구 사령관 설악
  • 청년전지공작대 성립 1주년기념(1940.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