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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강병익 姜炳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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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강병익
한자명 姜炳益
본 관  
이 명  
출신지 평안북도 창성(昌城)
생몰년월일 1913. 12. 22 ~ 1981. 1. 13
운동계열 광복군
관련 단체 한국광복군 제3지대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945년 5월 한국광복군 제3지대 입대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0)

1913년 12월 22일 평안북도 창성군(昌城郡) 청산면(靑山面) 율곡동(栗谷洞)에서 태어났다.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서 활동하였다.

한국광복군 제3지대는 징모 제6분처가 발전하여 성립되었다. 징모 제6분처는 일본군 점령 지역과 근접한 안후이성(安徽省)푸양(阜陽)에 정착한 후 초모 공작을 전개하였다. 제3지대에서는 중국 내의 지하 조직망을 화북, 화중, 화남 지역으로 나누고 이를 기반으로 전방 공작원을 파견하였다. 화중 지역 공작책은 한광반(韓光班) 출신의 윤창호(尹昌浩)였다. 화중 지역은 다시 쉬저우(徐州)·칭다오(靑島)·지난(濟南)·카이펑(開封)·구이더(歸德)·방부(蚌埠)·쑤현(宿縣)·화이양(淮陽)·루이(鹿邑)지구로 나누었다. 이 가운데 쑤현·구이더지구 공작원은 이원하(李元河)·신조일(申朝日)·조병팔(趙炳八)이었다.

1945년 5월 한국광복군 제3지대의 화중 지역 공작책인 윤창호와 접선하고 지하공작에 힘써오던 이원하는 신조일·조병팔 등과 더불어 적 후방 지역인 쑤현·구이더 등지로 파견되어 지하공작을 벌였다. 강병익은 이원하 등과 이미 사전에 접선하고 있었으며, 이들의 안내로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그 외에도 이원하 등은 최규련(崔奎連)·유창근(劉昌巹)·김철(金哲)·김옥선(金玉仙)·장부희(張富熙)·최시화(崔時華)·유순희(劉順姬)·김만식(金萬植) 등과 접촉하여 이들을 구이더·쑤현·루이에서부터 인솔하여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시켰다. 이후 일정한 교육과 훈련을 거쳐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었다. 최규련의 경우 북지공사(北支公司)를 자영(自營)할 때 쓰던 운수업용 트럭 여러 대를 처분하여 마련한 90여만 원의 거액을 지대에 헌납하여 적 후방 공작비에 유효하게 충당하기도 하였다.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서 활동하다가 광복 후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병기⋮

|참고문헌|

김승학, 『한국독립사』 하권, 독립문화사, 1970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6권 독립군전투사(하), 1975 ; 한시준, 『한국광복군연구』, 일조각, 1993.
  • 강병익(대표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