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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병수 金炳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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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병수
한자명 金炳洙
본 관  
이 명  
출신지 전라북도 김제(金堤)
생몰년월일 1898. 10. 18 ~ 1951. 5. 22
운동계열 3.1운동
관련 단체  
관련 사건 군산 만세시위
주요 활동 전북 군산에 「독립선언서」을 전달하고, 학생단의 서울 남대문 시위에 참가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0)

1898년 10월 18일 전라북도 김제군(金堤郡) 백구면(白鷗面) 유강리(柳江里)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영향으로 어릴 적에 기독교에 입문하였다. 신명학당(新明學堂)에서 초등교육을, 영명중학교(永明中學校)에서 중등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서울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수학하던 중 3·1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식을 앞두고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이갑성(李甲成)으로부터 군산 일대에서 유력자를 포섭하고 「독립청원서」에 찬성자의 날인을 받아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2월 25일 군산 지방으로 내려왔다. 우선 옥구군(沃溝郡) 개정면(開井面) 구암리(龜岩里)에 위치한 영명중학교 교사 박연세(朴淵世)와 접촉하여 이와 같은 뜻을 전하고 사람을 모으게 하였다. 2월 28일 다시 서울에서 이갑성으로부터 독립선언서 약 100매를 군산에 전달하도록 명령받고 3월 1일 아침 군산으로 내려왔다. 교사인 박연세·이두열(李斗悅)·김수영(金洙榮)과 접촉하여 서울에서 3월 1일 오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 운동을 벌일 예정인바 군산에서도 만세 시위를 일으킬 것을 권고하였다.

이에 박연세 등은 3월 6일 군산 장날에 만세 시위를 벌일 것을 의논하였다. 본래 기독교계 학교인 영명중학교의 교사들은 서울 기독교계 인사들과 연락하곤 하였는데, 그가 접촉함으로써 만세 시위를 구체적으로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 약 100매를 전달하여 배포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모자라는 선언서는 영명중학교에서 복사하기로 하였다. 군산 거사는 계획 전날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교사들이 연행되면서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남은 교사와 학생들이 강행한 끝에 군산 3·1운동은 영명중학교와 기독교계 멜본학교 학생, 보통학교 학생과 교인들이 합세한 태극기를 든 500여 명이 만세 대열을 갖추어 진행되었다.

지방시위를 준비한 뒤 다시 서울로 돌아와 3월 5일 예정된 학생단의 2차 남대문 시위에 참여하였다. 참가자의 대부분은 학생이었고 지휘자인 강기덕(康基德)은 보성법률상업학교(普成法律商業學校), 김원벽(金元壁)은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재학생이었다. 참여자들은 적포를 휘두르고 태극기를 흔들며 남대문 쪽을 향해 행진하였고 군중에게 격문을 배부하였다. 시위행렬에 참가한 군중이 점점 늘어 1만 명을 넘어서는 등 대대적인 시위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일제 경찰의 저지로 강제해산되었고, 많은 학생이 부상당하였다.

김병수 일제감시대상카드 뒷면(국사편찬위원회) [판형2]

남대문에서의 만세 시위 후 경찰에 붙잡혀 1919년 11월 6일 예심에서 치안방해 및 그 교사라는 죄목으로 징역 1년 2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하여,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고 징역 8개월에 미결 구류일수 중 180일이 본형에 산입되는 판결을 받았다.

옥고를 겪은 뒤 1921년 세브란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의사 시험에 합격하였으며, 이후 익산 중앙동에 삼산의원(三山醫院)을 개업하였다. 의원 개원 후에도 기독교인으로 익산군 이리기독교회(裡里基督敎會)에서 일하면서 광희여숙(光熙女塾) 설립에 기여하고 교장으로 활동하였다. 광복 후에는 한국에 보모 양성기관이 없음을 안타까워하여 보모 양성학원을 발족하고 원장으로 일하는 등 교육 분야에서 크게 공헌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참고문헌|

「金炳洙 신문조서」 ; 1919.8.30, 「이계창 등 예심종결결정」 ; 1919.11.6, 「이계창 등 판결문」, 경성지방법원 ; 1920.2.27, 「윤익선 등 72인 판결문」, 경성복심법원 ; 『매일신보』 1921.10.9 ; 『중외일보』 1927.2.1, 1928.7.20 ; 『동아일보』, 1947.2.1, 4.6 ; 『독립운동사』 3권, 국가보훈처, 1973 ; 『독립운동사자료집』 5권, 국가보훈처, 1973 ; 박이준, 「전남지방 3·1운동의 성격」, 『국사관논총』 96, 2001.
  • 김병수 프로필 사진
  • 김병수 일제감시대상카드 뒷면(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