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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반수 金班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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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반수
한자명 金班守
본 관
이 명
출신지 경상남도 동래(東萊)
생몰년월일 1904. 9. 19 ~ 2001. 12. 22
운동계열 3.1운동
관련 단체
관련 사건 부산 만세시위
주요 활동 1919년 3월 11일 부산 일신여학교 만세시위 주도
포상훈격(연도) 대통령표창(1992)

1904년 9월 19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동래면(東萊面) 칠산동(漆山洞, 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부산에 있는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 현 동래여고) 고등과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부산에도 서울로부터 학생 대표가 내려와서 경성학생단의 이름으로 3·1운동을 알리고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며 시위를 고무하였다. 일신여학교 기숙사 주변을 비롯하여 시내 동구 지역 시장가 주변과 거리에도 격문이 뿌려지는 사건이 일어났으며, 일신여학교 교사인 박시연(朴時淵)과 주경애(朱敬愛)는 학생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두 교사의 지휘 아래 고등과 4학년 심순의(沈順義)·김봉애(金奉愛)·김복선(金福善), 3학년 김응수(金應守), 2학년 김난줄(金蘭茁)·김신복(金新福), 1학년 이명시(李明施)·송명진(宋明進), 학년 미상 김순이(金順伊)·박정수(朴貞守)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11일을 거사 일로 정하고 3월 10일 수업을 마치고 태극기 만들어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기숙사 벽장의 창문을 가리고 어머니가 혼수감으로 마련해 놓은 옥양목으로 태극기를 만들었다.

3월 11일 오후 9시경 일신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좌천동 일대에서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가 끝난 후 같은 학교 학생으로 이날 만세 시위를 주동한 박정수의 좌천동 집에 함께 숨어 있다가 형사에게 붙잡혔다.

1919년 4월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출옥 후인 1920년 봄 일신여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소재 금서공립보통학교와 현 대구시 달서구 송현동 소재 효성여자보통학교에서 약 3년 간 교사로 재직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배석만⋮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3권, 1971 ; 동래학원100년사편찬위원회 편, 『동래학원100년사』, 1995.
  • 일신여학교 만세 시위관련 보도(『신한민보』, 19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