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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구수암 具壽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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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구수암
한자명 具壽巖
본 관  
이 명  
출신지 경상남도 동래(東萊)
생몰년월일 1901. 2. 1 ~ 1920. 5. 1
운동계열 3.1운동
관련 단체  
관련 사건 기장면 만세시위
주요 활동 1919년 4월 5일 동래군 기장면 만세시위 주도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2)

1901년 2월 1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기장면(機張面, 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東部里)에서 태어났다.

3·1 만세 시위가 벌어진 기장 종로 거리(1960년대) [판형2]

1919년 3월 13일 저녁에 마부 김수문이 동래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서재선이 입수한 뒤 남문 축구장에서 동료 6명과 함께 읽었다. 함께 있은 면서기에게 도움을 받아 등사판을 빌려서 3월 28일 기장면 구관청 빈방에서 400장을 복사·인쇄하였다.

1919년 4월 5일 혈서로 쓴 “양심 발원 인도적 자유 민족”과 “조선 독립 만세”, “조선 독립국”이라고 쓴 큰 깃발을 들고 기장시장으로 가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모여든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다가 경찰에 체포당했다. 동지들과 함께 포승줄에 묶인 상태로 한밤중에 기장면 대변포(大邊浦)에서 배로 부산항까지 옮겨진 뒤 부산감옥에 수감되었다.

1919년 5월 1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에 따라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1919년 6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대구에서 복역하던 중 고문으로 인해 병이 생겨 보석되었으나 가출옥한 지 15일 만인 1920년 5월 1일 사망하였다. 가족은 어머니와 나이 어린 여동생뿐이고, 재산이 없어 초상을 치르지 못하고 있었는데 명정의숙 학생, 기장여자청년회원들이 성금을 모아 1920년 5월 22일 면민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때 명정의숙 한문 선생 박난수가 조사를 짓고, 권은혜가 읽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유신⋮

|참고문헌|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19.6.11 ; 「독립유공자 2百명 새로 찾아내 3·1절 훈포장 수여」, 『동아일보』1992.2.28 ; 「독립유공자 2백 명 새로 포상」, 『한겨레』 1992.2.29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3, 1971 ; 기장군지편찬위원회 편, 『기장군지』 上, 2001 ; 김동철·강재순, 「1920~1930년대 초 기장지역 사회운동」, 『한국민족문화』 8, 부산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996.
  • 「독립선언서」(보성사판)
  • 3·1 만세 시위가 벌어진 기장 종로 거리(1960년대)
  • 판결문(대구복심법원, 1919.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