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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병두 金秉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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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병두
한자명 金秉斗
본 관 경주(慶州)
이 명 김경삼(金敬三)
출신지 경상북도 영덕(盈德)
생몰년월일 1879. 1. 17 ~ 1952. 5. 4
운동계열 의병
관련 단체 영덕의진, 김하락의진, 신돌석의진
관련 사건 영덕전투
주요 활동 1896년 영덕의진 참여, 김하락의진의 영덕전투 참여, 1906년 신돌석의진 참모장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0)

1879년 1월 17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축산면(丑山面) 칠성리(七星里)에서 아버지 김기준(金基俊)과 어머니 이원봉(李元峯)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이고, 다른 이름으로 김경삼(金敬三)을 썼다.

1896년 4월 결성된 영덕의진(盈德義陣)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7월 영덕에 들어온 김하락(金河洛)의 이천의진(利川義陣)과 함께 영덕전투를 벌였다. 1895년 1월 31일 의병을 일으킨 김하락은 서울 진공 계획을 수립하기도 하였으나 일본군의 지원을 받은 관군의 공격으로 실패한 후 경북 북부 지역으로 이동하여 의성연합의진(義城聯合義陣)을 결성하여 청송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를 치렀으며, 다시 경주로 이동하여 경주연합의진(慶州聯合義陣)을 결성하여 경주성전투(慶州城戰鬪)를 치렀다. 그리고 영덕으로 이동하여 7월 13일과 14일 남천쑤(남천숲)에서 영덕전투(盈德戰鬪)를 벌였다. 이때 영덕전투에 참전하여 크게 활약하였다. 그러나 의병장 김하락이 전사하여 의진이 해산되자, 다른 의진으로 이동하였다.

1906년 4월 6일 영해에서 창의한 신돌석(申乭石)의 영릉의진(寧陵義陣)에서 박수찬(朴壽燦)과 함께 참모장(參謀將)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영릉의진은 대장 신돌석을 비롯하여 도선봉장 한영육(韓永育), 분진선봉장 전세호(田世浩)·이현규(李玄圭), 중군장 김용욱(金容旭) 등으로 편성되었다. 1906년 4월부터 1908년 12월까지 신돌석의 휘하에서 참모장으로 의병 500여 명을 이끌고 일본군의 진압 작전에 대응한 유격전(遊擊戰)을 전개하였다. 1908년 12월 12일 영덕군 지품면(知品面) 황곡(黃谷) 상계(上溪)에서 신돌석이 피살된 후 은신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참고문헌|

김하락, 「陣中日記」, 『독립운동사자료집』 1집,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 「義兵大將申公遺事」 ; 「申將軍實記」·「申義將傳」, 『독립운동사자료집』 3, 1971 ; 영덕군, 「신돌석장군실기」, 『구국창의록』, 1990 ; 김희곤, 『신돌석, 백년만의 귀향』, 푸른역사, 2001 ; 경상북도, 『경북독립운동사』Ⅰ(의병항쟁),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