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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임시정부

    콘텐츠/대한민국임시정부 [] 에 대한 전체 277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51 기독교 한교복리촉진회에 보낸 오철성의 회신 기안

    중앙집행위원회비서처문고 구분기관수신발신초고필사 서한기독교한교복리정진회주비위원회년 월 일년 월 일6월 26일 3시7월 3일 시 요지 발기담임요청 자료제보존인간수발송 제 호 차 회의월 일 시월 일 시7월 3일 시 비서장부비서장비서과장처장 오철성(吳鐵城) 월 일 시월 일 시2월 29일 15시월 일 시1월 29일 10시 얼마 전 6월 1일자 편지를 통하여 기독교 한교복리촉진회를 주비(籌備)하여 조직하고, 발기인회의 기록을 보내오고, 발기인 담임에 대하여 요청한 것 등의 사항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필요한 것이므로 찬성을 표하며 발기인을 담당하려고 합니다. 이에 특별히 회신합니다. 내용대로 시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52 강홍주가 오철성에게 보낸 편지

    홍주(弘周)는 한교(韓僑)로서 동북(東北)에서 성장하였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집도 잃게 되자 혁명선배를 따라서 30년간 험난한 지경을 헤치며 다녔습니다. 그리하여 혁명의 이론과 책략을 더러 알기도 합니다. 일찍부터 동북과 내지(內地)의 군중들 속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뛰어다녔으며 왜놈들에게 잡혀 악형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생각 외로 9.18사변이 돌발하자 어쩔 수가 없어 장성 이남으로 들어갔습니다. 상해(上海), 남경(南京), 광동(廣東)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수년간 여러 의견들을 제기하였지만, 해마다 의견이 맞지 않아 충돌이 생겼으며 그들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경제대권을 쥐고 있고 홍주(弘周)는 원조도 없이 고립되었기에 병약한 아내와 어린 아이를 데리고 입에 풀칠하기도 힘듭니다. 게다가 의리를 중히 여기고 나쁜 습관이 없기에 지금 아주 초췌해져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겨우 쇠잔한 목숨을 유지하면서 죽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생과는 만난 적이 없지만 혁명동지의 입장에서 매우 곤란한 처지에 처한 동지를 구제하여 일이 잘 되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편지로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가르침을 주시면 매우 기쁘겠습니다. 이에 편지를 올립니다. 편안 하시기를 바랍니다.

    53 김구의 ′중국 항전과 한국독립′ 기사

    중국항전과 한국독립 1944년 7월 중국항전과 한국독립- 중국항전 7주년을 기념하여[김구(金九] 지금 동맹국이 동·서 각 전장에서 빈번히 첩보(捷報)를 보내오고 있는 시기, 우리는 중국항전 7주년 기념일을 맞게 되어 모두들 매우 감동하고 분발하며 공동의 적에 대한 적개심의 정서가 더욱 높아져 필승의 신념도 더욱 굳어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7.7사변이 발생한 때의 상황을 돌이켜보니 정말 금석지감(今昔之感-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그때 국제 형세는 중국에 대하여 매우 불리했습니다. 즉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파쇼국가들의 세력이 전에 없이 팽창하여 마치 파시즘이 전세계를 정복할 것같이 보였습니다. 특히 일본제국주의의 동방에서의 침략 기염이 날로 거세져서 강대한 군사역량으로 동북(東北)을 먼저 점령한 후에 계속하여 화북(華北)을 침략하였으며 더 나아가 전 중국을 삼키려고 하였습니다. 거꾸로 중국의 상황은 모든 것이 다 적들보다 낙후하고 특히 현대적인 군사장비가 적들보다 너무나 낙후하기에, 수많은 근시안적인 정치가와 군사가들은 일본제국주의 앞에서 무서워 벌벌 떨면서 일본제국주의를 이길 수 없는 힘으로 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 비할 바 없이 영명한 중국민족의 지도자 장개석(蔣介石) 선생은 원대하고 투철한 정치적 안광(眼光)으로 항전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전국의 군민을 영도하여 전례가 없는 대규모적인 항일전쟁을 결연히 일으켜서 중국민족의 부흥의 기초를 닦아놓았습니다. 우리는 중국항전의 목적이 중국민족의 자유해방과 세계의 영구적인 평화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항전은 혁명적이고 정의로운 항전으로서 전체 중국민족이 적극적으로 이 항전에 참가할 뿐더러 전세계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와 민족, 특히 동방의 각 피압박민족은 모두 이 항전을 동정하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사실이 증명하다시피 지난 7년간 중국민족이 용감하게 투쟁한 결과, 일본침략자들이 중국을 삼키려는 시도를 분쇄, 전세계 인류의 끊임없는 동정을 불러일으켜 세계 반 침략전쟁의 승리의 기초를 강화하였습니다. 중국의 항전은 분명히 세계의 반 침략전쟁의 선구입니다. 멀리 9.18사변, 1.28사변부터 7.7 노구교(蘆溝橋)사변까지 모두 중국민족이 단독으로 강대한 일본침략자에 대해 저항한 신성한 항전이며, 10여 년간 끊임없이 강인하고 처참히 행한 항전은 전세계 정의로운 인사들의 파쇼침략자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켰으며 끝내 유럽과 태평양의 반침략대전을 일으켰고, 중·미·영·소(중국, 미국, 영국, 소련) 등 30여 개 반침략국가의 대단결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파쇼침략자를 타도하고 ′세계민주대가족′을 건립하는 밝은 앞길을 개척하였습니다. 우리 한민족은 지난 30여 년간 민족과 국가의 자유독립을 위하여 계속하여 투쟁하였으며 위대한 중국민족은 우리 한민족의 가장 친밀한 동정자이고 지원자입니다. 따라서 과거의 수많은 중국항일전쟁과 기타 혁명운동에 한국혁명동지들이 적극 참가하였으며, 그들은 중국의 항일혁명사업을 자신의 일로 여기면서 중국민족의 깊은 동정에 보답하고 자신의 자유해방을 이룩하려고 하였습니다. 7.7항전이 일어난 후 한민족은 이 항전에 대한 기대는 매우 간절하고 매우 큽니다. 이 항전의 승패는 중국민족의 운명을 결정할 뿐더러 한국민족의 재생여부에 대한 관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인으로 중국의 한국혁명동지들은 모두 적극적으로 각종 항전사업에 참가하고, 본국의 동포들도 적 후방에서 여러 가지 반일혁명투쟁을 일으켜 중국의 항전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중국항전의 수도 중경(重慶)에 있는 한국임시정부는 중국의 당정군(黨政軍) 각 방면의 지지와 지원을 받고 있으며, 전체 중국인사들의 깊은 동정을 받고 있어 나날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하에 한민족의 해방투쟁은 꼭 순조롭게 진행될 것입니다. 우리는 중한민족이 이렇게 긴밀히 단결하고 협력하면, 꼭 일본침략자를 뒤엎고 중국항전의 필승과 한국독립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깊이 믿습니다. 카이로회의와 테헤란회의 이후 중·미·영·소(중국, 미국, 영국, 소련)는 전시 및 전후의 여러 문제에 대한 더욱 깊은 양해와 단결 및 협력을 강화하는 문제에 대하여 최후승리의 기초를 닦아놓았습니다. 최근 영·미(영국, 미국)는 서유럽에서 제 2 전장을 개척하였고, 소련은 동북유럽에서 새로운 공세를 폈으며, 미국의 해군, 공군은 태평양에서 새로운 공세를 펴 모두 휘황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독일의 침략자 히틀러(希特勒) 및 일본 침략자의 패망은 머지않아 일어날 것이고, 중국항전의 최후의 승리와 한국의 완전독립은 우리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곧 다가올 승리의 전야에 반드시 더욱 간고하고 맹렬한 전투를 준비, 전투로서 승리의 내일을 맞이합시다!

    54 한국청년 이송에 관한 김구의 공함

    삼가 아룁니다. 근간에 적군 중 한적(韓籍-한인) 병사들과 적후(敵後-적 후방)의 우리나라(한국) 청장년들 중에서 귀순해 오는 자가 날로 증가되어 우리정부는 귀국(貴國)의 군사위원회와 군정부(軍政部)에 따로 서한을 보내어 각 전구(戰區)에 아래와 같은 사항을 전달해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즉 각 전구(戰區)에서 이제부터 자원으로 귀순해오는 우리나라 청장년들을 포로로 대우하지 말고, 즉시 부근의 한국광복군 소속부대에 넘기거나 혹은 직접 중경에 이송하여 우리 정부에 맡겨서, 우리정부가 그들을 훈련시킨 후 한국광복군 각 지대에 파견하여 복무하게끔 해달라는 것입니다. 돌아온 회신에 의하면 즉시 각 전구에 명령을 내려 그대로 실시하게 하였다는 등 사항이 있었고 이것은 문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에 호남성(湖南省) 자흥(資興)현의 공작원이 보고한 것에 따르면 작년 연말에 우리나라 청년 최덕림(崔德林)등 12명이 적군으로부터 이탈하였는데, 귀 제9전구에서는 곧바로 포로수용소에 넣어 감금했으나, 다행이 제9전구 장교부의 정치부주임 서중악(徐中岳)동지의 주선으로 그 중 10명은 석방 되어 이 전구의 각 사단의 정치부에서 복무하고 다른 2명은 불행히 감옥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귀 각 사부에 파견되어 복무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학생들은 재학 중에 강요에 의하여 입대하여 중국에 왔으므로 중국의 언어와 습관을 너무 몰라 그들을 복무하게 하여도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 학생들과 새로 온 사람들을 함께 중경에 이송하여 우리 정부에 넘겨주어 얼마간 훈련시킨 후, 적당히 분배하여 복무하게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이에 특별히 편지 드립니다. 위의 내용대로 제 9전구 정치부에 명령을 내려 최덕림(崔德林)일행 모두를 중경에 이송하여 우리 정부에 맡겨 처리하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5 오철성의 연설문

    중화민국 33년 7월 17일 중앙당부의 한국임시정부 지도자들을 위한 환영연회에서 한 오철성(吳鉄城) 비서장의 축사 오늘 저녁 중국국민당 중앙당부의 동지들이 간단한 연회를 마련하여 한국임시정부 주석, 부주석, 국무위원, 각부 부장 및 한국의정원, 광복군, 여러 선생들을 초대하여 한국임시정부의 일치단결과 내각의 개편을 경축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선생들께서 광림하셔서 대단히 영광스럽습니다. 중한양국은 지리상 인접국이고 역사관계상 형제의 나라입니다. 전통적으로 깊고 두터운 우의가 중한 양대 민족 사이에 유지되어 왔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긴밀해졌습니다. 30년 전 일본 강도가 마수를 뻗쳐 귀국에 침입하였으며, 1910년에 귀국을 핍박하여 일한합병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이 때로부터 귀국은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중국혁명은 선임총리[손문(孫文)]의 지도하에 무수한 혁명투쟁을 기세 높이 벌였습니다. 귀국의 지사들은 소문을 듣고 일어나 바다를 건너와 우리의 혁명운동에 참가하였으며 본당(국민당) 당적에 정식으로 가입한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양국 혁명동지들의 결합은 중한양국의 밀접한 관계를 하나의 공동신념 아래로 더욱 뭉치게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한국독립운동의 진전이 중국혁명운동의 도움에 의거하고 중국혁명운동의 성공은 필연적으로 한국독립운동의 성공을 촉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귀국의 임시정부는 상해에서 성립하자마자 우리의 선임총리가 지도하고 있는 혁명정부와 연계를 취했습니다. 1921년 귀국은 전 국무총리 겸 외교총장 신규식(申圭植)을 특사로 특별히 광주에 파견하여 혁명정부를 방문하고 선임총리에게 인사를 올렸습니다. 이때로부터 귀국의 임시정부와 우리나라 정부는 가장 밀접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무수한 험난을 겪으면서도 중단된 적이 없습니다. 우리 정부는 언제나 모든 기력을 다하여 확실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귀국의 독립운동 과정 중, 오늘 여기 계시는 여러 선생들은 귀국의 본토, 길림(吉林), 상해(上海) 등지에서 여러 차례나 일본에 큰 타격을 준 위대한 행동에 모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셔서 심각한 인상을 영원히 남겼으며 우리는 이 때문에 매우 기쁩니다. 7.7항전 이후 태평양전쟁이 잇달아 폭발하였으며 일본침략자의 흉악한 면모는 전세계 인사들 앞에 완전히 폭로되었습니다. 우리들 공동작전의 목표는 더욱 뚜렷해졌고, 우리들의 공동의 적인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는 역량은 더욱 강화되었으며, 민주국가의 공동의 승리는 의심할 나위도 없습니다. 전후 세계평화 문제를 논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일본침략자들의 해독과 유린을 받은 한국인민에게 가장 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작년에 우리나라 장개석(蔣介石) 주석이 미국 루즈벨트(羅斯福) 대통령, 영국 처칠(邱吉爾)) 수상과 카이로회의를 열고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 조선을 자주독립하게 한다고 정식으로 세계에 선포하였습니다. 이것은 귀국의 자유독립 최대의 보장이며, 귀국의 독립운동의 전도에 있어서 최대의 광명(光明)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방침이 될 수 있는 한, 최단기간에 완전히 실현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번 귀국의 임시정부의 내각의 개편과 일치단결로 임시정부가 이미 귀국의 통일적 정부가 되어 복국(復國)과 독립의 책임을 지게 된데 대하여 동맹 각국은 모두 기뻐하며 우리정부와 인민 역시 특별히 기뻐해 마지 않습니다. 이번의 내각 개편으로 귀국의 독립운동은 용왕매진(勇往邁進)할 것이며 우리의 침략자를 타도하기 위한 공동작전도 신속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김 주석과 김 부주석 및 여러 선생들의 건강을 축원합니다! 한국의 독립이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 동맹국의 항전이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

    56 국민당 중앙당부의 환영에 대한 김구주석 답사

    중국국민당 중앙당부의 한국임시정부 지도자들을 위한 환영연회에서 한 백범(白凡)김구(金九) 주석의 답사 사회자 및 여러 선생들, 제가 귀국에서 유랑한 30여 년간, 오늘 저녁처럼 이렇게 성대한 연회에서 귀국의 당과 정부의 여러 선배와 여러 선생들의 공동지도와 공동환영을 받아보기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저는 오늘의 모임이 서로간의 간단한 감정상의 연계와 일반적인 ●●가 아니라 중한협력의 새로운 출발과 신기원을 창조하는 중대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가 하루라도 일찍이 우리의 일치단결을 이루었다면 오늘과 같은 모임이 진작에 열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모든 동지들을 대표하여 깊은 사의를 표합니다. 동시에 제가 능력이 적고 덕도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의 사랑을 받게 되어 송구스러우면서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세계를 하나의 대가정(大家庭)이라고 가정하면 중한 양가는 매우 많은 공통점을 고유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그 중에서 가장 의의가 있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몇 가지를 골라서 여러분들께 보고 드리겠습니다. 첫째, 지나온 역사가 일부분 혹은 전부 다른 점이 있겠지만 똑같이 제국주의의 압박과 독점, 유린을 받고 있으며 그 고통은 같습니다. 둘째, 시간상의 길고 짧음과 규모상의 크고 작음이 같지 않지만 아프고 간고하고 어려운 고통을 똑같이 맛보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의 동방파쇼강도를 타도하는 목적도 같습니다. 중한 양가는 아픈 경험으로부터 정치적 이상(理想)을 넘어선 공동의 인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공동의 인식이란 우리가 우리 대가정의 평화를 영원히 수호하기 위하여 국가의 크고 작음이나 민족의 강약을 막론하고 완전독립과 자유로운 행복을 꼭 향수하게 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의 공동 주의(主義)입니다. 이 대가정 안에서 자그마하게 불공평한 일이 생기더라도 대가정의 혼란을 야기시켜 곧바로 평화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미국의 부통령 거티스(革萊士) 선생이 "매우 적은 사람들에게라도 불평등이 있다면 혁명은 영원히 정지하는 날이 없다"고 하신 말이 정말 맞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혁명을 정지하려면 파쇼강도의 중심국을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진영 즉, 우리 동맹국 진영에서도 파쇼의 도당들을 숙청해야만, 인류가 나날이 진보하고 (암울한) 역사 역시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어제까지 당신이 기름등잔을 사용하였다고 해서 오늘 당신이 전등을 사용할 권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전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두 전등을 만들 줄 아는 노동자는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는 지난 아픈 경험을 겪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공평무사한 정신으로 4대 자유를 쟁취해야 합니다. 전세계인류를 위하여 싸우는 민주국가의 최후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지금, 중한 양가의 앞길은 아주 밝습니다. 귀국은 4대 강국에 든 아시아 유일의 국가입니다. 귀국은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힘쓸 때 아시아의 평화를 절대 잊지 않았으며, 아시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 힘쓸 때 우리나라의 완전독립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것은 카이로회담에서 이미 증명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른바 "적당한 시기에"라는 말에 대하여 저는 장래에 우리의 노력과 귀국의 협력으로 꼭 없애버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 선생들이 중한양국협력의 신기원을 열어놓는 오늘 저녁에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것은 매우 의의가 있습니다. 오늘 저녁 모인 취지가 중한 양가의 자손만대에 걸친 행복의 씨앗을 심어놓기를 바랍니다. 여러 선생들, 저는 할말이 아주 많지만 짧은 시간에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피차간에 서로 마음이 통하기에 무언 중에서도 행동과 사실로 서로 충분한 협력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같이 잔을 들어 장개석(蔣介石) 주석의 건강과 항전의 승리를 축원합시다.

    57 광복군 인원 명부

    韓國 光復軍 第一支隊第一區隊受訓人員名單 職別姓名備考 隊員崔林麟(최림린)舊隊員 隊員金洪道(김홍도)新隊員 隊員崔大吉(최대길)新隊員 隊員徐廷天(서정천)新隊員 隊員金志山(김지산)新隊員 隊員高秉燦(고병찬)新隊員 隊員韓復(한복)新隊員 隊員黃河奎(황하규)新隊員 隊員李茂重(이무중)新隊員 隊員馬程(마정)新隊員 隊員崔相齊(최상제)新隊員 特務工士吳春寶(오춘보)華籍

    58 임시정부 지원요청 공문 및 중경 한인명부

    항일전쟁이 폭발한 이후 경제내원이 중단되는 바람에 우리나라 임시정부와 중경에 있는 교민들의 생활이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였습니다. 때문에 귀 당부에서 차관을 배급하여 부조해 주길 바랍니다. 우리들의 우의를 위하여 매달 50만원을 배급하여 원조를 주시고 이로 인해 400여 교포의 양식과 기타 일체 수요에 대응하게 해주길 바라며 이 자금을 빌어 유지하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 상황이 곤궁한데다가 근 수개월 동안 물가가 오르고 투항하여 돌아오는 교민들도 늘어나는 바람에 생활이 더욱 곤난해져 극히 불안감을 느껴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교민들의 생활을 온정시키기 위하여 특히 귀 당부에 편지를 올리니 양식부에 파격적으로 공출미발급조례에 따라 매달마다 공출미 80석(지금의 수요에 따른 수량)을 발급하여 유대를 표하고 생활을 유지하게 해주길 바랍니다. 답장을 기다립니다.

    59 중국 국민당 기안문

    중앙집행위원회비서처문고 구분기관수신발신초고필사 서한군수처년 월 일 시년 월 일9월 19일 15시9월 21일 시 요지 기밀 자료제보존인간수발송 제 호 차 회의월 일 시9월 21일 시9월 21일 시 비서장부비서장비서과장처장 3월 9일 21시월 일 시월 일 시월 일 시9월 19일 2시 총재님께서 (33)신양시진(申陽侍秦)(서류명) 전보를 통하여 달마다 한국임시정부에 보조비 백만 원을 지급하고 별도로 한번에 예비경비 5백만 원을 지급하며 모두 한국임시정부의 차관으로 하게 하고 군정부(軍政部)에서 9월 달부터 지급하라고 허락하셨습니다. 이번 경비의 수령수속은 귀서(貴署)의 고완(高完)이 총괄하여 우리 처에 발송하여 전달에 편리하도록 해주기를 바라며 이에 서한을 보냅니다. 내용에 따라 처리하고 회신을 보내주기를 바랍니다. 이에 군수서(軍需署)에 올립니다.

    60 한국과 국제문제에 관한 이충모의 희망 안

    첫번째 희망안: 한국문제 중국국민당이 진심으로 한국독립운동을 도와 한민족이 중한간의 영구적인 친선국가를 건립하게 하려는 뜻이 있다면, 필히 아래 다섯 가지 일을 실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1. 한인학원을 설치하여 철학, 정치 두 과목의 인원을 신속히 배양합니다. 2. 권위적인 신문과 잡지들을 조직하여 정치이론을 지도합니다. 3. 한국임시정부로 하여금 광복군을 신속히 훈련시키고, 기성 역량을 동원하여 항일전투에 참가하게 합니다. 4. 한인에 대한 정치사업의 노선을 개방해야 합니다. 5. 한국의 혁명가족과 전투력이 없는 인원을 산업지구 혹은 농업지구에 수용하여, 후방의 생산을 촉진하고 자급자족의 정신을 발휘하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