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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임시정부

    콘텐츠/대한민국임시정부 [] 에 대한 전체 277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31 조선민족혁명당 창립 제8주년 기념선언(2)

    조선민족혁명당 창립 제8주년 기념선언 친애하는 동지들 그리고 동포 여러분! 7월 5일은 조선민족혁명당 창립 제 8주년 기념일입니다. 우리는 세계 폭풍우의 전야, 중국항전 제 6주년을 앞두고 우리 당의 창립 제 8주년 경축대회를 개최하게 되었고, 이는 또한 중대한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 1935년 7월 5일, 우리는 중국의 수도-남경에서 5개 당을 통합하여 전체 민족을 대표하는 유일한 정당인-조선민족혁명당을 창립하였습니다. 이는 10여 년 이래 조선혁명 통일운동의 최대 성과일 뿐만 아니라, 국내 신한회와 해외 독립당의 혁명전통의 찬란한 역사를 촉진하고 계승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조선민족혁명당 설립의 목적은 일본제국주의를 전복시키는 것이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전 민족의 힘을 결집하여 중한연합 항일전선을 구축하였습니다. 조선민족혁명당은 이와 같은 상술 혁명 목표를 처음부터 한결같이 견지하고 부단히 분투함으로써 전국 인민의 옹호와 지지를 받게 되었으며, 아울러 중국당국과 중국인민의 동정 및 원조를 받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항일전쟁 발발 후, 우리는 중국의 승리를 굳게 믿어 왔습니다. 조선은 바로 조선독립의 보장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중국 항일전쟁에 참전하는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조선 독립의 보장이며, 이는 곧 우리당의 최대 임무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1938년 조선의용군을 창립하고 조선혁명청년을 단결시켜 장 위원장(장개석-將介石)의 지도 하에 직접 중국 항일전쟁에 참전하여 훌륭한 전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우리 조선혁명당 건아들의 열혈(熱血)은 중국의 대지를 물들게 하였습니다. 상해 비밀공작, 중국 육군, 화북의 적후(敵後)공작 등의 작전 중 우리 당의 열사들이 장렬히 희생되었습니다. 이는 조선민족혁명당이 조선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용감히 분투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 항일전쟁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분투하였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소련-독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발발 후, 우리 당은 우선 전 민족을 대표하여 영국, 미국, 소련의 반독반일(反德反日) 애국전쟁을 옹호하고 지원하는 마음을 전달하였고 국제형세의 변화에 따라 한국 임시정부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였고 무장역량에 대한 통합을 주장하였습니다. 지난해 가을 조선의용군과 한국광복군의 통합 편성을 기반으로 한국 임시정부의 제 34차 회의를 거쳐 전 민족 통일을 성공적으로 구현하였습니다. 이에 우리 당의 정확한 정책과 민족단결을 위한 충성은 세계인민의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금년 봄에 이르기까지 우리 당은 이미 4당 통합을 완성하고…(원본판독불가)… 당의 조직 활동은…(원본판독불가)…발전을 거두어 우리 당의 신뢰는 나날이 높아 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현재 아메리카의 각 혁명 단체는 잇따라 우리 당에 자원 가입하고 있으며, 화북 일대에 위치한 우리 당의 적후 공작도 비약적인 발전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조선민족혁명당의 역량이 나날이 성장하고 있어 전 민족을 해방시킬 수 있는 그 능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조선민족혁명당 창립 제 8주년을 경축하는 오늘날, 전 세계 반 파쇼 전쟁은 이미 대결전의 중대 고비에 들어섰습니다. 이는 우리 조선혁명당에게 절대적인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지만, 세계 각국의 발전형세가 불균형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독일과 이탈리아 파쇼주의 악당들이 동부전선과 북아프리카에서 전대미문의 참패를 당했지만, 극동의 일본 침략자들이 한국 내 인민들에게 강제로 실시하고 있는 극단적인 전시 정책을 간과하여서는 안됩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대하여 국제상황은 절대적으로 유리한 반면, 조선혁명당은 상대적으로 극히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기 때문에, 국내외 항일 혁명세력은 객관적 환경과 수요의 정도를…(원본판독불가)…"국제 공동관리"는 사실상 조선혁명당에 해로운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여명의 어둠 속에서 비관적이고 실망적인 태도를 극복해야 합니다. 다만 맹목적인 낙관주의는 혁명에 해로운 것이기 때문에 국제 형세를 정확히 판단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동지들과 동포 여러분께 금후 우리당의 작업방향에 대해 지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현재 세계 전쟁의 주도권은 이미…(원본판독불가)…파쇼 침략자들로부터 동맹국으로 이전되었습니다. 북아프리카의 승리와 제3국제기구가 해산된 후 객관적 조건이 성숙되고 영국, 미국, 소련의 합작이 강화됨에 따라 제2 전쟁터의 확장은 불가피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루즈벨트와 처칠의 제5차 회담은 태평양 작전 문제를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영국, 미국은 일본에 대해 대규모의 공세를 취했으며…(원본판독불가)…조선독립문제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문제로서 자리매김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동맹국의 승리 및 이에 대한 원조는 조선이 독립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자 보장이기도 하지만, 조선혁명의 승리는 반드시 자력갱생에 의지해야 함을 명기해야 합니다. 우리의 혁명은 국내 인민들을 동원해야만 국제적인 원조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민족독립 운동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국내 민중을 조직 및 훈련시키고 광범한 반일, 반전, 반병역(反兵役) 운동을 전개하여 군대의 무장봉기를 준비해야 합니다. 셋째: 빠른 시일 내에 각 당파의 통합기구를 설립하여 전 민족 단결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려면 우리는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낙후현상을 부단히 극복하고 분열 현상을 방지해야 합니다. 이런 경향을 방지할 수 없을 경우, 각 당파 간 통합기구를 설립할 수 없으며 전 민족 단결 강화 작업도 불가능 할 것입니다. 넷째: 한국임시정부를 확장, 강화하여 임시정부를 유력한 혁명정권 기구로 성장시켜 빠른 시일 내에 국제적으로 조선독립 위치를 인정 받으려면 반드시 기존 임시정부를 시정하고 정부에 적합한 보통 선거제를 실시하여 조선혁명당의 무장역량을 확장, 공고히 해야 합니다. 대중의 역량을 기반으로 임시정부를 발전시키고 임시정부가 유력한 지원자를 소유한 조선민족의 최고 전투지휘부로 성장케 하여 우리민족의 지위를 제고시키고 "국제 공동관리"를 물리치고 우리나라 독립 임무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동지들 그리고 동포 여러분! 금후 우리 당은 김규식(金奎植) 주석과 총서기 김약산[金若山-김원봉(金元鳳)의 호] 동지의 영도 하에 한마음 한 뜻으로 단결하여 전국 인민들과 함께 노력하고 분투한다면 필연코 우리의 어렵고 막중한 임무를 완성하여 조선민족의 자유를 획득하고 조선민족을 독립시키며 중국 항일전쟁과 세계 반 파쇼 전쟁의 승리를 쟁취할 것입니다.

    32 중앙정치학교 한국인 입교 추천에 관한 공문

    중앙집행위원회비서처문고(中央執行委員會秘書處文稿) 구분기관수신발신초고필사 공함중앙정치학교 교육 위원장 정천방(程天放) 년 월 일년 월 일 8월 7일 시8월 10일 시 요지 년 월 일8월 10일 시기밀,한국 학무부(學務部)에서 조계림(趙桂林), 김정숙(金貞淑) 등 2명 학생을 중앙정치학교에 추천 하는 사항에 관한 공문 자료명제보존자교정간수발송 제 호차 회의월 일 시4월 18일 시월 일 시8월 10일 시 비서장부비서장(副秘書長)비서처과장처장 월 일 시월 일 시8월 7일 9시8월 7일 10시월 일 시

    33 중앙정치학교 한국인 입교 추천에 관한 공문

    조사를 거쳐, 중앙정치학교는 정치간부 인재를 양성하는 최고 학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항일 전쟁 및 나라를 되찾는데 인재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조계림(趙桂林), 김정숙(金貞淑) 등 2명을 귀교의 인재 양성 취지에 적합한 인재들로써 조예가 깊기 때문에 추천하는 바입니다. 심의 후, 중앙정치학교에 지시하여 이 학생들이 귀교에 입학 후, 깊은 연구와 실습에 매진할 수 있도록 많은 지도 부탁 드립니다. 이에 중국국민당 오철성(吳鐵城) 비서장님께 보냅니다.

    34 중앙정치학교 한국인 입교 허가 공문

    중국국민당 중앙정치학교 공문 사유(발신자 기재)중화민국중화민국발신수신취급허가처리교정간수별지 조계림 등 한국 학생의 본교 입학에 관한 신청을 비준합니다.32년 9월 8일 발신년 월 일 수신중경교육부 자료 124호자료 호 8월9일 특자(特字) 제 5913호 공문에 따르면 한국 임시정부 학무부(學務部)에서 조계림(趙桂林), 김정숙(金貞淑) 등 두명을 중앙정치학교에 추천하여 공부할 것을 청하였고 아울러 지원서 1부와 김정숙(金貞淑) 학생의 성적표 1부를 첨부하였습니다.지금까지 외국학생이 본교에서 학습한 사례가 없었습기 때문에 한국임시정부 상황의 특수함으로 인해 이를 융통하게 처리할 수도 있지만, 추천한 조계림(趙桂林) 학생의 졸업학교 성적표 원본은 반드시 제출해야 하고, 김정숙(金貞淑) 학생은 경제학과 1학년에 해당…(원본판독불가)…하는 과정에 한해서만 입학이 가능합니다.

    35 한국 독립운동 지원 요청 편지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회 공문

    36 김구의 장개석 면담 요청 공문

    대한민국임시정부용지

    37 "국민대회 준비회 취지서 국민대회 준비회 선언"

    국민대회 준비회 취지서 국민대회 준비회 선언 천하의 바른 도리와 인류의 정의는 우리들로 하여금 자유를 얻고 나라를 해방케 하였습니다. 오늘날, 억압과 굴욕의 악몽에서 깨어난 우리 민족은 광명의 그날을 위한 종소리를 울렸습니다. 후회와 원한으로 가득찬 지난날, 철창 속, 혹은 해외에서의 그 나날들을 돌이킬 때마다 우리 동지들이 혁명을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었고 선열들의 고난은 또 얼마나 컸을지 이 모든 것들이 눈앞을 흐립니다. 우리는 "이 날"이 오기를 이미 36년간 기다려 왔으며 이는 바로 선열들의 피로 바꾸어 온 행복이며 평화를 위해 싸워온 동맹의 깊고 두터운 우정의 결실로써 전세계 인민들은 반드시 이들을 위해 추모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이 날"을 경축할 수 없는 선열의 영령 및 연합국의 의병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바입니다. 지금까지 경시, 억눌렸던 저력이 순식간에 폭발하여 하늘을 찌를 듯한 의지와 기개가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게 되었습니다만 이 모든 것들이 필연적인 자연 현상이라 판단됩니다. 단 광복 이 대업은 아득한 난제로서 무조건 선후(先後)의 완급(緩急)질서를 유지하고 대의 의무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국토를 적에게 빼앗겼지만 3천만 민중의 마음속에 간직한 민족정신은 경술((庚戌)년 나라의 변란으로부터 혁명 지사(志士)의 기백과 함께 해외에 보존되었습니다. 일본정권이 퇴각하는 이 순간, 이 정권을 대체하는 우리 정부는 기미(己未)년 우리나라 독립이후 구체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모든 당파를 초월한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는 최고의 기구로서 우리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환영하고 지원합니다. 이는 목전 국내외 사태의 적합한 대의명분이기도 합니다.구 정부의 잔재가 존재하는 오늘, 우리 국민이 현재 문제점들에 대한 의견을 다음과 같이 총괄합니다. 국민의 의사에 따라 재중경 대한임시정부를 지원할 것을 선서합니다. 국민의 의사에 따라 각 연합국에 사의를 표시합니다. 국민의 의사에 따라 민정에 대한 수습방법을 강구합니다 등. 정체(政體), 정당(政黨)에 관한 옳고 그름은 이후의 임무이고, 아울러 정강(政綱) 및 정책의 가능여부에 관한 논의도 이후의 임무입니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우리 대업을 정정당당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갑작스런…(원본판독불가)…. 아울러 민중의 의사를 총결하는 방법을 통해 "국민대회"를 준비하여 이후 진정한 민주의 정부를 설립하는데 기초를 닦을 것입니다. 사용방법은 모두 임시적인 방법으로서 현재까지 명실상부한 최적의 방법은 아닐지라도 우리의 의도와 희망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의명분을 고수하는 것임을 구명하는 바입니다. 전국 동포 여러분! 새로운 국가 건립의 첫걸음을 위해 "국민의사"의 기치하에 3천만 민중이 단결하여 현재 및 미래의 우리의 행복과 번영을 이룩합시다.

    38 시국책진회 창립 선언

    時局策進會 創立 宣言 同志同胞들! 西方의 파시쓰侵略 ●心은 意太利(이탈리아)의 無條件 投降으로 因하여 이미 總崩壞의 緖幕이 開始되었고 東方 파시쓰 侵略君 日本은 中·英·美·蘇(중국·영국·미국·소련) 反侵略國家의 壓力下에서 또한 敗亡의 最後 命運을 기다리고 있다. 즉 이때는 우리 國家의 獨立과 民族의 復興을 위한 一切의 準備를 完成하지 않으면 안될 緊急한 時期인 것이다.  實로 現在의 一日은 넉넉히 過去의 一年 乃至 十年의 價値를 가지고 있는 寶貴한 一日인 것이다. 그런데 不幸히 現在 우리 獨立運動의 總領導機構인 臨時政府는 去八月 三十一日 以來 停頓의 狀態에 빠져있다. 우리 韓國의 革命運動者는 이러한 情勢를 보고 누구를 勿論하고 다같이 焦燥한 마음과 迫切한 情緖를 禁하지 못할 것이며 누구나 府院當局이하로 速히 이 亂局을 打開하고 政府를 健全하게 하며 獨立運動을 强力하게 推進시켜주기를 喝望 또는 期待하고 있을 것이며 누구나 다 같이 意志와 力量을 總團結하여 府院當局을 擁護支持할 決心과 覺悟가 있을 것이다.  同志同胞들, 臨時政府를 擁護支持하며 擴大發展하는 것은 決코 某 個堂 或은 某 個人의 責任이 아니라 全体 우리 革命者가 共同히 負担할 神聖한 任務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原因과 觀點下에서 黨派的 界淺을 超越하여 共同一致한 認識下에서 (1) 이 難局을 打開하고 政府를 健全히 하여 一切의 政務를 積極推動케 할 것, (2) 우리 民族의 統一團結을 促成하여 우리의 獨立運動의 及時成功을 圖謀할 것, (3) 이 두 宗旨를 貰撤하기 爲하여 一切의 障碍와 因難을 克服하고 府院當局을 絶對로 支持擁護하기 爲하여 時局策進會를 組織하였다. 同志同胞들과 같이 奮發하자! 다같이 努力하자!

    39 전후 한국독립에 관한 언론 메모(3)

    총재: "개인적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전후(戰後) 한국의 독립은 중국정부의 결정정책입니다..." (1943년 8월 5일 한국 선전부 부장 김규식(金奎植)이 미국 교포(韓僑)한교에 대한 방송 연설문) "아시아주의가 몰락한 국가에 대해 무한한 동정을 표시합니다만 이런 국가의 자유와 평등에 대해서는 오직 책임만 있을 뿐 그 어떤 권리도 없습니다." 송 외무부 장관 자문: "중국은 일본이 전패 후 동북 및 대만을 중국에 되돌려주고 조선이 독립국가로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번 전쟁 중 중국은 국토에 대해 그 어떤 야심도 없습니다." [1943년 8월 4일…(원본판독불가)… 담화] 중앙집행위원회 비서처 미국 중의원 의원 니 바오링(鳥伯陵) "한국 정부를 즉시 승인할 것을 주장" (1943년 4월 5일 수 많은 원외 위원회에 제안) 태평양관계 제4장 조선부분: "전후(戰後) 조선의 앞길은 중국과 소련 양국의 양해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이 외에도 중국은 간도(間島- 현재 하나의 반독립행(半獨立行) ′성′을 위반)를 조선에 할당 해주는 데 대해 고려해야 합니다. 이곳의 인구는 조선사람이 3:1의 비율로 중국사람보다 많습니다. 이렇게 할애된 부분에 관해 양국의 소수민족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다른 중-한 계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정치방면, 30여년 일본이 조선을 통치한 결과, 조선인민은 행정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과도기에 국제 간에 하나의 조선민정기구를 공동 조직하고 태평양위원회에서 한명의 고급 전문인원을 파견하여 이를 책임지고 집행케 함으로 한국에 국제상의 원조를 부여하는 것입다. (1942년 11월 13일 중경 연합판) 태평양 전쟁후 건설에 관한 사항, 조선문제에 관해 "되도록 조선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인민을 지원하고 육군, 항공방면에 대해 미국과 조선의 항공기 부대를 조직하고 중국에게 제공하는 차용물자 중, 일부분을 중국부대와 함께 작전하는 조선부대와 공유할 수 있습니다." "임의의 방식으로 조선이 자신의 스스로의 자유와 독립을 선포해야 합니다." 국제선전처 편역 영국 글래스고 선봉신문사의 금년 8월 5일 사설: "중국은 조선의 독립을 희망한다." (금년 8월 7일 중경 대공신문) 지서푸(吉瑟浦)- 미국생활, 시대 및 행복 3대 편집장(主編)) "전후 태평양회의에서 한국관련 일을 처리하다." (태평양전쟁 관련문서 참조) 시카고 태양신문(太陽報) 금년 4월 27일 사설: "한국은 독립전 국제 감독 범위 내에 있다." (금년 4월 29일 중경 자유서보 참조.) 배비(裵斐)선생(미국 콜롬비아대학 교수) "우리가 승리를 거둔 후, 일본을 반드시 중국, 만주, 몽고 및 고려에서 물러나게 한다." (하퍼스 메거진(Happer′s magazine)에서 미국이 극동지역에서 채용해야 할 방안 주문) 푸어라이처(기자 이름: 佛萊撤)(전쟁 전, 미국 뉴욕 선봉(先鋒) 논단신문 주 동경 기자) "극동의 주변 국면 제2항: ′한국독립′ 주장" (31년 5월 28일 논단신문에 발표.) 안로이(顔露爾) 전 아시아함대 사령의 클라크대학 졸업식에서의 연설 "피점령 국가들은 모두 회복하되 만주와 대만은 반드시 중국에 되돌려 주고 조선의 독립을 허가해야 한다." (31년 5월 27일 중경 연합판) "대전이 끝난 후, 지난날 일본이 무력으로 점령한 식민지는 전부 일본의 점령에서 벗어나고 조선의 독립을 허가해야 한다." (31년 4월 3일 중국인민 보고서)

    40 김구의 화재구제비(火災救濟費) 요청에 대한 주가화의 편지

    어제 한국임시정부 독립당 김구(金九) 주석이 보내신 공문을 받아 보았습니다. 공문 내용에 따르면, 이번 달(3월) 4일 저녁, 한국 직원 숙소의 화재로 손실이 막대하고 복정일(濮精一)동지가 중상을 입어 현재 선후(善後) 작업이 어렵다고 합니다.그리하여 우리 정부가 20만원을 지원해 시급한 상황을 처리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우리가 이 사항에 대해 조사한 결과, 한국임시정부의 재정이 곤란하고 이번 화재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예전과 다름없이 우선 우리 부서에서 김구(金九) 주석이 요구한 금액을 지원하여 한국 인민을 구제할 예정이니, 심사 후 비준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일이 잘 풀리길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