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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임시정부

    콘텐츠/대한민국임시정부 [] 에 대한 전체 277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1 임시정부 국무회의 비서장 공문

    敬啓者 國務會議에서 貴下 財務部 駐美第二行署 財務委員으로 選任하였삽기, 選任狀을 付送하오니 照亮하심으로 敬要

    12 한국광복군 9개 조항

    한국광복군 9개 조항 한국광복군 이(李) 총사령관은 한국광복군을 밀폐, 본 조직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였습니다. 경제기술제정회의 후에 정한 모든 권리의 기준규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한국광복군은 우리나라 항일 작전 기간에 본회를 취하여 참모총장의 운영 하에 둔다. 2. 한국광복군은 본회로 돌아가 총 관할 지휘한 후, 우리나라 항전기간에 독립당을 회복시키고, 임시정부가 한국 국경으로 나아가기 전에 우리나라 최고 총사령부의 유일한 군령을 접수한다. 또한 어떤 다른 군령을 받거나 다른 정치적인 일에 연루 되어서도 안 되며, 한국독립당 임시정부와 함께 우리 나라 군령기간을 지키고 굳건한 명의관계를 보장 해야 한다. 3. 본 회는 이 군대를 원조 함으로서 한국 국내 지역 및 국경 근방의 구역을 점유하고, 한국 항전을 배치함을 원칙으로 한다. 한국 국경으로 밀고 나가기 이전에 한국인이 끌어들일 수 있는 피 점령구로 주요 행동구역을 삼아야 한다. 그…(원본판독불가)…기간에 특별히 한국 전쟁구역에서…(원본판독불가)…. 이전에 부근에 있는 조직이 군대를 훈련시키고 해당 지역의 최고 군사 장관의 관할을 장악하게 된다.4. 전쟁구역 제 1선 이후의 구역은…(원본판독불가)…우리 전투 구역의 장관이 소재하는 곳이자 본회가 있는 지역이다. 5. 이 군대 총사령부가 있는 지역은 군위원회의 지정에 따른다. 6. 이 군대는 해양에 있든 육지에 있든 후방에 있든 모두 우리나라 본적의 사병 혹은 행정 관사이며, 문화 업무 및 기술요원으로 군사위원회의 명령을 받는다. 7. 이 군대의 지휘명령에 관하여 모든 영도자들이 하는 일은 본회가 지정한 사무 군사산업 책임 연합회에 따른다. 8. 중일 전쟁이 끝나기 전, 한국독립당 임시정부는 이미 한국 국경으로 나아가려 하였으므로, 이 군대와 임시정부의 관계는 별도로 의정하여 공포하여 결정한 것이다. 다만 계속 본회의 군령을 받음으로써 전투를 배치하는 것을 위주로 한다. 9. 중일전쟁이 끝나고 임시정부는 아직 한국 국경으로 나갈 수 없었다. 즉, 이 광복군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는 군사위원회 본의회의 관제정책에 달려있고, 당시의 상황에 따라 자체 처리하기로 한다. 전쟁상의 각 항목은…(원본판독불가)…를 통하여 특별히 전달된다. 즉, 군사위원회 사무실에서 위임하여 처리된다.

    13 재미동포와 임시정부(1923.9.8)

    臨時政府宣傳擴張說 경비도 전보다 많이 지출하여 독립운동의 진상을 선전할 터 임시정부에서는 오년 전부터 미국 화성돈[華盛頓(워싱턴)]에 구미위원부(歐米委員部)를 설치하고 선전사업에 노력하던바 이번 임시정부에서는 선전의 방침을 변경하여 화성돈(워싱턴)에 있는 구미위원부 선전국을 확장하고 경비의 예산도 전보다 많이 지출하여 조선 민족의 독립운동진상과 방금 조선 민족의 문화 향상된 실태를 세계에 선전할 계획이라더라. (상해)

    14 한국지사 김구선생 종사 복국운동사료

    목차표 목차123456 공문접수호 공문발송호 수발날자31.3.2 문서종류생신 서한서신(1)서신(2)서신(3)서신(4) 문서접수자대공보(大公報)기사 청부단위 사건개요김구(金九)가 모 임(林)대부인의 60세 생신에 드리는 편지[33년 갑신(甲申)]김구(金九)가 청평(青萍)에게 드리는 서신(22.3.10)김구(金九)가 청평(青萍)에게 드리는 서신(23.10.30)김구(金九)가 청평(青萍)에게 드리는 서신(24.10.6)김구(金九)가 청평(青萍)에게 드리는 서신(27.7.5)김구(金九)주석이 한국독립선언23주년기념대회에서 발표한 보고서 별지 페지001002005-003008-006009010 주기 목차표 목차78910 공문접수호 공문발송호 수발날자11.10.3221.6.3315.8.333.1.37 문서종류서한공함 문서접수자(영문) 자유서보(自由西報)조소앙(趙素昂)이 수자문(守子文)부장에게 드리는 서신한국"독립신문"외교부가 국민정부 문관처에 드리는 서한 청부단위 사건개요김구(金九)등이 중한문화협회성립주년대회에서 발표한 연설송(宋)부장 배견 요망 (1)성명서 1부 (2)비망록 1부 첨부한국형명지사가 중국 국민당 제12중전회에 드리는 비망록한국 뢰중백(赖中白)씨가 주석에게 한국 고대의 자기꽃병 하나를 선사하여 숭경과 감사의 뜻을 표하는 별지. 영문 서신 1견 별지 페지수001002-019020021-027 주기 김구(金九)선생이 청평(青萍)선생에게 보낸 친필서신중의 1견 민국22년 청평선생에게 복정일(濮精一)동지를 통하여 선생이 잘 계신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선생의 방조에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사람을 끝까지 방조하는 의리를 품고 우리들의 협력대업이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동생 김구(金九) 배계 3월10일 김구(金九)선생이 청평(青萍) 선생에게 보낸 친필서신중의 1견 민국 23년 10월 청평(青萍) 선생에게 드림 청평(青萍) 선생께 안(安) 동지를 통하여 근황을 요해하였습니다. 저는 선생의 성근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과공(果公)이 필히 방법을 찾아 위해의 일을 타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독직 관리 서(徐)모의 상권 행동을 징벌하여 후환을 두절하여야 합니다. 항공기사 이(李)군의 일은 요즘 해결할 방법이 생겼습니다. 이 일은 비록 작으나 저의 신용과는 크나큰 관계가 있습니다. 하루빨리 합당한 지위에 안배해 주길 바랍니다. 복(濮)군은 요즘 집에 일이 있어 청가를 맡았기에, 특히 안(安) 동지에게 위탁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전에 흉금을 털어놓은대로 저의 일을 처리해주길 바랍니다. 저는 선생이 가르친 방법대로 새로 도장 하나를 새겨 도장을 찍어 들이니 잘 간직해주길 바랍니다. 오늘 이후에 만일 저를 대신하여 돈을 받으러가는 자가 있다면 누군가를 불문하고 이 도장을 가지고 가야 함야하니 선생께서 많이 유심해주시길 바랍니다. 동생 김구(金九) 올림. 10월3일 청평(青萍)과 패성(沛誠) 두 선생에게 드림 이 편지는 민국 24년에 쓴 것입니다. 패성(沛誠) 동지는 성이 공(贡)씨이고 소쟁(萧錚)씨가 독일에 있을 때의 동학이었습니다. 그 당시 패성(沛誠) 동지는 소쟁(萧錚)씨를 도와 한국의 사무를 처리하였습니다. 청평(青萍)과 패성(沛誠) 두 선생에게 복(濮)군을 통해여 근황을 요해하였습니다. 두분께서 위해(威海)의 일 때문에 분주한다는 소식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지금 사면초가의 처지이니, 우리들의 협력대업이 중단되질 않기를 위하여 계속 힘써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복(濮)군더러 저를 대표하여 처리하게 해주길 바랍니다. 동생 김구(金九) 올림. 10월 6일 청평(青萍) 선생에게 요즘 잘 지내셨습니까? 정일(精一) 동지를 통하여 당신의 근황을 알아보았습니다. 선생의 보살핌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는 바이며, 선생이 동주맹제(同舟盟濟)의 의리하에 원조를 주신데 대하여도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정일(精一) 동지에게 부탁드려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동생 김구(金九) 올림. 7월 5일 …(원본판독불가)… 32년 10월 11일 오후 3시에 중한문화협회는 백●(百●)식당에서 성립주년회의를 개최합니다. ●●, 대계도(戴季陶), 풍옥상(馮玉祥), 양한탐(梁寒探), 김구(金九), 조소앙(趙素昂)등 선생들이 연설을 발표합니다. [10월11일 자유서보(自由西報)] 이 곳의 중한문화협회 기념일 중한 문화협회의 중국인 및 한국인 회원들과 그들의 손님들로 총 200명 정도가 3시에 파이 링(Pai Lirg) 레스토랑에서 어제 정오 모였다. 티 파티(Tea party)가 시작되었을 때가 그 협회의 1주년이었다. 중국인 지도자들로는 입법부 유안과 협회 대표인 선포 박사(Dr. Sun Fo), 검사 유안 대표인 타이 치타오(Tai Chi-tao), 국무부 위원인 펭유시앙(Feng Yu-hsiang)과 장지(Chang Chi), 국민 정치 위원회의 회원인 왕시지에박사(Dr. Wang Shih-chieh)와 모타유이(Mr. Mo Tah-hui), 국민 정치 위원회의 비서관인 샤오리쩨(Shao Li-tze), 정보국의 H. C. 리앙(Mr. H. C. Liang), 국민당의 집행 위원회 장관인 티잉(Mr. Ti Ying),…(원본판독불가)…충칭(Chungching) 항공 국방부의 개리슨(Garrison) 사령관과 호 구오-광(Ho Kuo-kuang)이 참석하였다. 한국인 지도자들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인 김구(Mr. Kim Koo), 외교부 장관인 조소왕(Mr. Tsso So-wang), 홍오장관인 김규식(Mr. Kiusic Kimm), 교육장관인 장소해(Mr. Chang So-hai), 한국 독립군대의 최고 사령관인 이징전(Lee Ching-chun) 장군, 한국 혁명파 장관인 김약산(Mr. Kim Yak-san),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치 위원회의 대변인인 차이 탕우(Mr. Chai-wo), 외교부 부장관인 H. K. 왕(Mr. H. K. Wang)이 참석하였다. 연설의 사회를 맡았던 선포 박사(Dr. Sun Fo)는 중국과 한국은 공격자 일본을 정복한 후 번영와 공존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카도(Mikado)는 가야한다."고 여러번 말했다. 어제 20주년의 기념행사에서 그가 썼던 주제 하에서 …(원본누락)…. 그는 한국인 동지들에게 연합 승리가 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독입은…(원본누락)…라고 말했다.…(원본누락)… 타이치타오(Mr. Tai Chi-tao)는 중국인과 한국인들에게 그들의 굽히지 않는 노력으로 투쟁을 계속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는 지금 그들이 직면해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면 승리와 평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쓴 중국인 성명으로 협회에 문장을 선사했다. 번역사는 "중국과 한국은 동양 대륙에 있는 두 나라이며,그들의 오랜 문명과 역사는 일본이 생기기 1,000년전부터 시작되었다. 일본의 문화는 아직 발달되지 않은 단계로 한국을 모방하고 있다. 일본이 강력한 세력을 갖게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은 한국을 정복했다. 오늘은 한국의 독립이 한국의 염원일뿐만 아니라 한국의 독립을 지원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는 중국과 세계평화를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펭 유시앙(Feng Yu-hsiang) 장군은 그는 한국이 독립과 자유를 되찾을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합 승리가 곧 올 것이다. 한국은 독립하게 될 것이다." 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혁명파에게 국가의 독립을 위해서 계속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시간 동안 중국과 한국 간의 협력을 회상하면서 김구(Mr. Kim Koo)는 일본 군대를 정복하는 것이 중국과 한국의 공동 목표라고 말했다. 조소왕(Mr. Tso So-wang)은 선포 박사(Dr. Sun Fo)의 글 "미카도(Mikado)는 가야한다."에 강한 동의를 표했다. 그는 그 글을 읽은 모든 한국인들이 매우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한국이 독립하지 않고는 세계 평화가 실현될 수 없다는 타오 치 타오(Tao Chi-tao)의 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장지(Mr. Chang Chi)는 지난 몇 년동안 여행했던 한국을 떠올리면서 명왕조 중국 문명의 흔적을 보았던 것을 회상했다. 그는…(원본누락)…. …(원본누락)…한국은 정복자에 맞서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며 청왕조 동안 중국의 지배에 대항했던 유일한 나라였다…(원본누락)…. H. C. 리앙(Mr. H. C. Liang)은 중국 국경일의 하루 이후에 오는 중한문화협회의 기념일은 한국인 독립 운동의 징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한국 문명의 공통점과 특성에 대해서 설명한 후, 그는 두 나라의 국민들이 협동하여 세계 문명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협회의 장관인 사투 테(Mr. Ssutu Teh)는 지난 해 동안 협회의 활동을 보고했다. - 센트랄(Central) 자문(子文)부장에게 오래동안 뵈옵지 못하였습니다. 부장님과 한번 만나보려고 하오니 적당한 시간과 장소를 잡아주길 바랍니다. 성명서와 비망록을 각 1부씩 첨부하니 선생께서 보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장(蒋) 주석에게 드리는 문건도 첨부하였으니, 장(蒋)주석에게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조소앙(趙素昂) 6월 21일 한국임시정부 외교부장 조소앙(赵素昂)의 성명서 한국에 대한 유엔의 승인을 독촉하고 한국과 유언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하여 본인은 성명을 발표합니다. 성명서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한국독립운동의 통일대업은 이미 완성되였고, 한국임시정부가 운동의 통일지휘권을 장악하였습니다. 2. 한국은 지금 현대민주정치의 길에 따라 전진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들은 한국이 국토를 광복한 후, 한국인민들이 자체로 결정하고 인민의 대표들이 헌법을 제정하며 정식정부를 설립합니다. 3. 한국은 이미 국내외에서 유엔과 협력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협력관계를 충분히 이용하기 위하여, 유엔은 한국과 진정하고 밀접한 군사와 외교관계를 설립하길 바랍니다. 4. 한국 내부는 이미 의견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한국인민들은 유엔, 특히 중국, 미국, 영국, 소련이 한국에 대하여 일체된 행동을 취하고 한국의 작전을 지지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만일 유엔이 상술한 4대 요소에 따라 속히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한다면, 우리의 공평과 합작의 원칙은 반추축국사이에서 곧 실행될 것입니다. 비망록요조 한국은 반추축전쟁에서의 임무에 대하여 약술하였습니다. 어떠한 방식으로 한국과 유엔이 최고한도의 협력을 할수 있는가에 대하여 설명하겠습니다. 1. 한국의 실제역량을 대표하는 한국광복군 중, 화중과 화북일대에서 수천명이 군대연락사업을 담임하고 있습니다. 산해관(山海關)의 남쪽 함락구에는 현재 대략 60만 한국인이 있으며, 동삼성에는 약 300만, 소련 경내에는 약 60만, 장백산 일대에는 3천여명이 있습니다. 그들은 중국의 유격대와 협력하여 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때문에 한국인들로 장래에 대군을 조직할 수 있고, 현재 군대의 연락사무를 강화할 수도 있으며, 밀식정보통신망을 설립하여 군대를 모집할 수도 있습니다. 2.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하는 이유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하면 유엔에 유리할뿐만아니라 전략상에서도 필요합니다. (1) 한국임시정부는 한국독립군을 영도하는 유일한 기구임으로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2) 한국임시정부는 26년의 기나긴 역사가 있으며, 한국독립운동을 영도하는 유일한 기구입니다. (3) 한국임시정부는 한국해외의 독립운동을 영도하는 유일한 기구일 뿐만 아니라, 시기가 성숙되면 한국 국내에서도 운동을 많이 벌일 것입니다. (4)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하면, 한국 국내외의 혁명세력을 단결시킬 수 있으며, 하나의 강대한 전투역량을 형성하여 작전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5)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하면, 일본이 한국 경내에서 괴뢰독립단체를 조직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6) 한국임시정부는 국토를 광복한 후 1년 내에 국민대표대회를 개최하며, 회의에서 헌법을 제정하고, 제정한 헌법을 장래 설립할 정부의 기초로 삼을 것입니다. (7)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하는것은 임시성, 전략성, 정치성에 따른 것이며 영구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8) 한국임시정부가 승인을 받은 후, 한국인들은 적극적으로 작전활동과 전후 평화사업에 참가할 것입니다. (9) 한국임시정부는 승인을 받은 후에야 물자를 조차하는 편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설사 법률상에서 승인을 받지 못하더라도, 사실상에서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10) 한국임시정부가 한국인을 승인하는 목적은, 그들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일작전에 참가하여 조국의 자유해방을 얻으려는데 있다는것을 승인합니다. (11) 한국임시정부는 과거에 유엔에서 열거하였던 이유들, 즉 한국의 내부가 통일되지 못하였고, 유엔국가들 사이에서 아직 공동의 양해를 얻지 못하였다는 이유들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승인합니다. (12) 한국임시정부는 한국인들이 일본을 제일 잘 알고 있으며, 한국의 지리위치상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필히 적들을 격파하는데 유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상의 각종 관점으로 말미암아, 각 관련 국가들은 이 문제를 소홀히 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인민들은 미국과 영국이 우선 먼저 이 문제의 중요성을 깨닫고, 행동 상에서 영도를 주어, 전세계의 평화와 안락을 실현하길 바랍니다. 한국혁명지사가 중국국민당 12중전회에 드리는 비망록 한국혁명지사들은 중국국민당 제 5회 제 12차 전체대회 결의에서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하고 필요한 물자원조를 주길 바랍니다. 그 주요한 의의와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세계반침략대전 중, 한국민족은 동맹국의 작전목표상에서나 혹은 그 전략상에서나 모두 중요한 지위를 차지합니다. (1) 지리상에서 볼 때, 한국은 일구가 대륙을 침략하는 병참기지임과 동시에 맹국이 일구를 격파하는 주요한 전략지점입니다. (2) 역사상에서 볼 때, 한국민족은 4000여년의 문화역사가 있으며 자체로 독립국가를 관리하였고, 국가가 망한 뒤 30여년간 끊임없이 반일부국운동을 개시하였으며, 이미 제일 강력한 반일세력을 형성하였습니다. (3) 현재 한국민족은 이미 단결일치되어 있고, 동맥국과 함께 작전, 일구를 격파하여 독립을 완성할 수있는 능력도 충분히 갖추었습니다. 2, 각 동맹국은 반드시 한국을 제일 충실한 동맹군으로 보고 확실한 원조를 주어야 합니다. (1) 한국민족독립운동의 목표는 동맹국 작전 목표에 부합됩니다. 즉 한국의 독립은 동맹국의 승리이며, 동시에 극동평화과 세계평화의 주요 보증입니다. (2) 중미영 3국 영수들은 이미 카이로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증하였습니다. 각 동맹국은 반드시 신속히 한국을 동맹국의 일분자로 정식 선포, 각종 필요한 원조를 주어, 삼천만 한민족이 반침략전쟁을 위하여 공헌할 수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3, 중국은 반드시 우선 먼저 한국독립운동을 원조하여야 합니다. (1) 중국은 입국원칙인 삼민주의, 항전건국강령, 근년래 당정군영수들의 역차 주장과 성명, 특히는 손중산(孙中山) 선생의“우리 민족과 연합하고 평등으로 대하여 공동으로 분투"하자는 유언과 약소민족을 부조하는 혁명정신에 의하여 한국에 절실한 원조를 주어야 합니다. (2) 현재 한민족을 원조하는 제일 중요하고 제일 유력한 방법은, 즉시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하고 각 주요한 동맹국을 추동하여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하는데 지나지 않습니다. 4, 중국이 우선 먼저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하는 주요한 이유와 작용. (1) 한국임시정부는 1919년 ′삼일′대혁명때 나타난 전민족혁명의 총 지도기관이며,일구의 조선통일권에 대항하는 유일한 적대기관입니다. (2) 중국이 항전을 시작한 이래, 한국의 각 주요한 혁명당파는 앞다투어 선언을 발표하여 옹호와 지지를 표하였으며, 대표를 파견하여 정부사업에 참가하였습니다. 최근의 몇번 회의를 통하여 한국의 각 주요 혁명당의 유력한 대표들을 망라하여 전민족을 단결일치시키는 권위가 있는 정부를 조직하였습니다. (3) 오늘의 한국임시정부는 제 36차 의정원회의 선언에서 말한바와 같이,“대내적으로는 전 민족의 반일운동을 지도하고, 대외적으로는 전민족의 의사와 권리를 완전히 대표하는 최고영도기관"입니다. (4) 한국 각 대혁명당인 한국독립당, 조선민족혁명당, 조선민족해방동맹(한공), 조선무정부주의자총연맹, 미국에 있는 한국인의 각단체들은 이미 연합선언을 발표하여 임시정부를 옹호하고 민족단결을 확보하며, 반일혁명의 지도중심을 확립하기로 하였습니다. (5) 임시정부가 승인을 받으면, 삼천만 한민족의 반일정서가 고조되고 단결이 더욱 공고해지며, 반일사업이 더욱 확대되고 동맹국에 대한 공헌도 더욱 커질 것입니다. (6) 일구의 민족기만선전을 타파하고, 특히 일구가 조성할 수있는 한간괴뢰의 일체 음모를 타파합니다. (7) 일구가 한국장정들을 징용하는 간계를 분쇄하고, 입대한 장정들의 반전과 투항을 촉성하여 일구에게 중대한 타격을 줍니다. (8) 중한 두 민족의 혁명우의를 증진하고, 두 민족의 전쟁시와 전쟁후의 협력관계를 더욱 공고히 합니다. (9) 중국이 아시아 각 피압박민족문제에서의 발언권을 제고합니다. 대한민국26년8월15일 독립신문 제5판 사유: 한국 뢰중백(赖中白)등이 주석 서신과 꽃병 등을 드리는 사건 처리: 주석 첨인 요구(꽃병은 관저에 들임) 주: 외교부에 올림. 결정방법: 처(處) 외교부: 별문: 공함: 중화민국 예 37호 제 00104 중화민국 37년 1월 3일 한국이 제1차 범아시아회의에 참석. 대표단 단원 뢰중백(赖中白)등이 주석함 을견과 꽃병 을개를 올림. 원 서신의 역문과 원 서신, 별지를 보냄.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국민정부 문관처 별지 부장 평화와 번영 속에 계속하여 증지시키고 시간이 오래 지나도 변하지 않길 바랍니다.각하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합니다. 뢰중백(賴中白)(서명) 하공득(夏孔德) (서명) 1947년 10월 10일 서울에서 장개석(Chiang Kai-Shek) 총통, 총통실, 난징, 중국 서울신문사 한국 서울 1947 10월 10일 각하 1946년, 4월, 제 1 회, 인도 뉴델리의 아시아 국가 관계 회담의 한국 대표단 단원인, 남한 임시정부 여성국장 고황경, 서울일간신문 사장 하경덕 박사, 그리고 가정부 의회 의원, 그리고 조선 기독교 대학장, 백낙균은 각각 각하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표시로 각하께 옛 한국 자기 화병을 드리는 영예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우리는 각하의 가장 현명한 지도력 아래 중국인민들의 혁명적 활동의 빛나는 업적과 각하의 원시안적인 정치 수안 아래서의 공화국 부흥의 훌륭한 성취를 보아 왔습니다. 우리, 한국 국민들은 지난 일본의 억압의 세월 동안에 중국과 각하에게 격려와, 동정 그리고 원조의 큰 빚을 졌습니다. 그러나 각하에 대한 우리의 겸손한 감정을 표현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동양에서 각하의 인격과 지도력의 크나큰 찬양자들입니다. 지난 봄 인도를 다녀오는 길에 중국을 지나오는 기쁨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좋은 행운이었습니다. 각하의 관료들과 중국 인민 지도자들이 가장 큰 친절의 호의로 우리를 받아주었고, 정부, 문화 그리고 공공 기관은 우리가 중국에 머무는 동안의 일정을 맞추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우리의 상하이에서 서울까지의 통행을 위해 특별 비행기, 츄-치앙기 전세에 가장 호의적인 동의를 해 주신 각하에게 감사의 큰 빚을 졌습니다. 우리가 각하의 특별한 호의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반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 국민과 나라를 향한 각하의 변함없는 호의의 표명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동양과 세계에서 평화와 번영의 발전 안에서 두 국민들 간의 우정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가장 높은 존경으로, 각하께, 관계 유지를 간청하면서. 존경을 드리며 한국이 아시아회의에 참석, 대표가 주석서를 올림 주석서 역문 주석각하 1946년 4월(역자주석: 이곳의 날자는 1947년 4월로서 잘못되였습니다)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서 제 1차 범아시아회의가 열렸습니다. 우리나라 대표단 단원들은 남한 임시정부 부녀부 부장 곽방공(郭芳孔)여사, 서울 매일신문사 사장, 입법회의원 하공득(夏孔德)박사, 조선기독교대학 교장 뢰백중(賴中白) 박사 등입니다. 그들은 고대 한국 자기 꽃병 하나를 각하에게 선사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각하의 영명한 영도하에, 혁명운동과 광복대업이 영광스러운 성적을 거둔데 대하여 숭경과 감사의 뜻을 표하며 깊이 경모하는 바입니다. 일구들의 통치하에 있던 유구한 세월 중에 각하와 귀국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면려, 동정과 원조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종래로 각하에게 우리의 마음을 표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각하는 극동지역의 영도자로서의 위대한 인격을 지녔습니다. 우리들은 오래 전부터 각하의 존함을 들어왔습니다. 올해 봄에 인도로 가던 길에 귀국을 들렸는데, 귀국 조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상해로부터 서울에 오신다면 우리가 다시 환대해드리겠습니다. 각하께서 저희들을 자강호 개인전용비행기에 태워준 데 대하여 무한한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이 참으로 깊은 은혜를 느꼈습니다. 이는 각하께서 우리 나라와 우리 인민들에 대한 후의입니다. 우리 두 나라가 극동과 전세계에서 우호관계를 구축하길 바랍니다.

    15 임시정부 주석 김구 공함

    대 중화민국 국민정부 외교부장 곽(郭)씨를 통해 전해 드림. 국민정부 임(林)주석 각하, 한국의 독립 및 전 세계 약소민족의 완전한 해방은 모두 귀국의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와 영광스런 최후 승리에 달려 있습니다. 이에 폐 정부를 완성하여 강화함과 동시에, 진영을 침략하여 특별히 대일 전쟁을 선포하려 하는 바입니다. 우리 양국이 공동으로 세계 공적을 처벌한다면, 인류 정의와 동아시아의 평화가 이루어 질 수 있을 거라 확신하기에, 이 소식을 삼가 전합니다.

    16 장개석의 일기

    중화민국 21년 4월 29일 -한국인 윤봉길(尹奉吉)씨가 상해홍구공원 일황탄생기념대회에서 폭사당한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군 사령관 및 공사 부상 후기- 고인 사마천이 말하기를, 원한을 품은 사람은 많고 많아 나라에 대한 원한은 불공대천이라 무력을 남용하여 침략자를 물리친다. 이로부터 그 무엇을 느낄 수가 없을까? 중화민국 30년 8월 6일 조선독립 원조 계획-우선 정부를 설립하게 하고 각 당파의 힘을 통일시켜 함께 일본에 저항한다. 중화민국32년 11월 18일 -카이로 회담 참석자의 인도 아그라 숙박기- 이번 루즈벨트(羅斯福)와, 처칠(應注重)의 회담 중 중요시해야 할 가장 중대한 문제: (갑)국제정치조직, (을)원동위원회조직, (병)중, 영, 미 연합참모단 조직, (정)점령지 관리방안, (무)미얀마 반공 총계획, (기)조선독립, (경)동북과 대만 반환문제. 중화민국32년 11월 22일 -루즈벨트(羅斯福) 대통령과의 야간상담 후기- (1)나의 주장에 따라 루즈벨트(羅斯福)는 전쟁 후 일본인은 자국의 미래 국가 체제문제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공산주의와 제국주의 문제를 중심으로 나는 러시아 공산주의에 대한 루즈벨트(羅斯福)의 정책을 칭찬했고 이미 초보적 효과를 얻은 것으로 위안이 되고 있다. 단지 소련의 이후 행동과 사실에 대해서는 아직 주의해야 하고 소련에 대해 깊이 믿지 못함을 분명히 알린다. 또한 제국주의 정책 응용에 성공하여 압박받고 있는 세계 인류를 구함으로써 이번 세계전쟁 중 미국의 희생과 공헌에 답례한다. (3)영토문제에 관하여 일본이 점령한 동북4성과 대만, 팽호열도 등 중국 땅을 중국에 반환하되 류큐열도 만은 국제기구가 중, 미에 위탁하여 공동 관리할 수 있다. 이에 관하여 나는 다음과 같이 제의하였다. 첫째: 미국을 안심시킨다. 둘째: 류큐는 갑오 전부터 이미 일본에 귀속되었다. 셋째: 이 지역을 내가 전체적으로 소유하는 것보다 미국과 공동 관리하는 것이 적절하다. (4)일본의 중국에 대한 배상 문제. (5)신강 및 그에 대한 투자 문제. (6)소련의 대일 참전에 관한 문제. (7)조선독립 문제에 대한 나의 특별한 관심은 루즈벨트(羅斯福)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나는 조선이 독립할 수 있도록 자신의 주장을 지원해 줄 것을 루즈벨트(羅斯福)에게 요구하였다. (8)중, 미 연합참모회의. (9)베트남 문제에 관하여 나는 전쟁 후, 중국과 미국이 독립을 원조할 것을 주장하고 영국이 이에 찬성할 것을 촉구하였다. (10)일본 투항 후 여순군항을 중국에 반환하고 중국과 미국이 이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문제. 일본3도 주둔군의 감시 문제에 관하여 나는 미국이 주재하고,필요시 중국이 군대를 파견하여 협조하면 된다고 밝혔다. 단, 상대방이 중국이 주가 되어 감시할 것을 주장할 경우, 이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으며 나도 이에 관하여 명확한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다. 오늘 밤 담화 내용은 여기까지이고 미국 측에서는 홉스킨스만 이번 회담에 참석하였다. 이번 회의는 원만히 종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루즈벨트(羅斯福) 대통령은 홉스킨스에게 토론 내용에 대한 초안을 작성하여 공표할 것을 명하였다. 중화민국32년 12월 3일 -카이로회담 선언 공표 후기- 앞으로 우리나라가 분발 및 향상할 수 없을 경우, 공허한 문장만으로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우리 국민이 함께 분발해야만 외교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중화민국 34년 11월 4일 -한국임시정부가 김구(金九) 선생 등의 귀국 송별 다과회 개최 후기- 오늘은 우리 국민혁명에 있어 일대사건이라 할 수 있는, 비로소 한국혁명당원이 귀국하게 되는 날이다. 나는 이 행사를 주관하여 성공케 하였으니 어찌 이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직 한국이 하루 빨리 독립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17 회의 공보 전문

    회의 공보 전문 루즈벨트(羅斯福) 대통령, 장개석(蔣介石) 위원장, 처칠(邱吉爾) 수상은 각 나라 군대에 관하여 외교 관련인원들과 북아프리카에서 회의를 개최하였고 이미 종료되었다. 회의중 성명 내용을 다음과 같이 총괄한다. 앞으로 일본에 대한 작전계획에 관하여 3국의 군사관련 인원은 일치된 작전계획을 갖게 되었다. 우리 3세 동맹국은 해군, 육군, 공군 각 방면으로 잔인하고 포악한 적에 대항할 것을 다짐하며 작전에 대한 압박감은 증가되어 가고 있다. 우리 3세 동맹국의 전투 목적은 바로 일본의 이번 침략을 저지하고 징벌하기 위한 것이다. 3국은 절대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영토를 확장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3국의 목적: 1914년 세계 제1차 대전시 태평양상 일본령 제도의 박탈 또한 일본 침략군이 점령한 동북4성, 대만팽호열도 등을 중화민국에 반환하며 또한 일본이 무력과 탐욕으로 점령한 기타 토지와 그곳의 일본인들을 추방한다. 우리 3세 동맹국은 조선인민이 받고 있는 노예 대접에서 벗어나 적당한 시기에 자유를 찾고 독립하게 할 것을 결정한다. 위의 결정내용에 따르면 3대 동맹국의 목표와 일본에 대한 연합국의 기타 작전목표는 일치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3대 동맹국은 장기간의 중대한 전쟁을 견디어 일본을 무조건 항복케 한다.

    18 임시정부 주석 외교 공함

    대한민국임시정부 용지

    19 한국정부 원조비 증액 및 전담기관

    보고자본 보고 시간 및 장소내용적요판단 혹은 입안비준 오철성(吳鐵城)8월 19일 보고한국정부에 대한 원조비용을 늘리고 지정기관에서 본 비용 부분을 책임지고 처리할 것을 요청하니 검토하여 지시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기존 조사를 거쳐 한국임시정부에 매월 50만의 경비를 지원할 것으로 결정하였었는데 현재 물가가 대폭 오름에 따라 자금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어 매월 100만원으로 증액 지불할 것입니다. 아울러 500만원 예비금을 별도로 지불하여 절실히 필요한 요구에 대비하게 할 것이며, 이를 전부 한국임시정부의 차관금액으로 간주하고 차관증서를 작성하여, 그 용도를 설명할 것입니다. 별지 내용은 원조경비 지출에 대한 차관내용을 표시하고, 지정기관에서 본 사항을 전담하여 처리할 것을 청하오니 이를 심의하여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별도로 한국임시정부 경비 명세서를 심사하고 발급하실 것을 청합니다.)한국임시정부의 보조비 사항에 관해서, 4월 18일 주 전부장은 금년 1월부터 매월 50만원씩 지불키로 허가하였습니다. 7월 11일, 진부장은 당시 물가가 대폭으로 상승하여 한교 생활이 어려움을 인식하고 7월부터 매월 100만원을 지불키로 비준하였습니다. 매월 100만원을 지출함과 동시에 500만원을 예비금으로 지불하고 지정기관에서 이를 책임지고 심사, 처리 할 것입니다.

    20 외사요보(外事要報)

    보고자본 보고 시간 및 장소내용 적요판단 혹은 입안비준 오철성10월 31일 서면보고외사요보 한국임시정부에서 판공처 임대금 400만원을 별도로 지출할 것을 청하오니 검토하여 지시하길 바랍니다. 한국임시정부 판공처 사항에 관하여 김구(金九) 선생께서 며칠전 이미 진현하셨습니다. 각하의 진술에 따르면 김구(金九) 선생은 이미 칠성강의 연못가에서 한 곳을 찾았으며 당시 연간 임대료 200만원, 보증금 200만원, 총 400만원을 지불할 것을 요구한다고 표시하였습니다. 조사결과 상술한 내용이 사실이고 400만원의 자금이 필요하니 가능한 지의 여부를 지시하여 주시길 바랍니다.조준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