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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국보 : 1909 년 02 월 12 일 기사 74 건
워싱턴 二월 五일발 전을 거한즉 대통령 루스벨트 씨가 캘리포니아주 의회에서 일본 학생을 따로 교수하자는 사건으로 의안을 제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곧 해지 총독에게 전보하였으되 이는 각박한 의안 중에 더욱 각박한 의안이니 속히 폐지하라 하였다더라.
새크라멘토 二월 五일발 전을 거한즉 일인 배척과 외국인의 집역인이 무역회사에서 직원 충임을 검지할 일과 당성 사회계의 계급을 분별하자는 의안은 금일 의회에서 준행이 되지 못하였으나 일인학생을 다른 학교로 보내자는 의안은 다시 투표하다가 마침내 실시가 되었다더라.
네바다 二월 五일발 전을 거한즉 당일 상의원에서 미국정부에 제의하여 전투 함대를 태평양으로 소환할 의안을 결의하였는데 이는 일인의 위협을 방비함이라더라.
규가랜쓰 二월 六일발 전을 거한즉 미국 탕업회사에서 三百만원을 허비하여 건축한 기계창이 화재에 몰소하였다더라.
상항(샌프란시스코) 신한민보사에서 각양 서적을 출판하여 일반 동포의 지식을 계발하기로써 목적하고 출판부를 크게 확장하는데 국문 五호 활자(즉금 신문 글자보다 적은 글자) 八萬자와 각색 곧 문우와 기타 인쇄 제구가 이왕 주문한데로 새로 도착하였는데 장차 배치하여 사업을 시작할 터인고로 사무가 일층 번거하다더라.
상항(샌프란시스코) 통신을 거한 즉 장인환 씨는 이미 샌큐엔린딩티감으로 가서 해역하는 중인데 혹 심방하는 사람이 있으면 매월에 마지막 토요일이라야 아무나 상면할 수 있다 하며 샌큐엔린은 상항(샌프란시스코)서 내왕 차비가 五十전이라더라. 장씨의 처역 연한은 二十五년인데 매년에 몇 달씩 으레이 감하여 주는 것을 체감하면 十七년 밖에는 되지 아니하거니와 四, 五년 동안에 행지가 단정한 것을 증거한 사람이 많으면 캘리포니아 총독의 권한으로 특사할 수가 있다하니 장씨의 평일 조행으로써 연한 전에 출옥될 줄은 의심 없이 믿겠다더라.
일본 영사 상야가 합중국(미국)정부와 교섭하여 한인 一명과 일인 一명을 본월 六일 선편에 해 본국으로 발환하였는데 이 두 사람은 대풍창으로 병원에서 구검을 당하던 자이라더라. 전설을 들은 즉 금번에 귀국한 한인이 일 영사에게 청원하여 귀국할 때에 본항 한인사회에서 알면 저희할까 근심하여 비밀히 주선한 결과로 이같이 신속히 귀국하였으니 병든 자의 신세는 가련하거니와 이는 국치를 생각지 못하는 자이라 가히 통한할 일이로다.
본항 일인의 포와신보(하와이신보)를 거한즉 거월 二十八일 동경 내전에 일렀으되 청국 선통유제가 천연두로 환병 중에 있다가 불행히 붕서하였다더라.
본항 일본영사관 서기생 쇼지아가 하와이 일인 뇌동자를 조사하고 돌아와서 불니틴 영자보 탐보원을 대하여 말하기를 힐로서부터 각 농장을 순시한 즉 중급문제는 사람마다 요구하는 바이나 이로써 폭란을 일으키는 일이 없다 하였더라.
경계자는 백경득의 거처를 아시는 동포는 합성신문사로 속히 기별하여 주시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