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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非)기독교인 교육 - 고등교육 |
고등교육(D) 이 중등교육이 하나의 복음 기관으로 사용되는 곳이 있으며, 그러한 이용이 목적과 원칙, 한계에 대한 올바른 고려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여기에 이의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 학생들이 과반수를 이루는 학교를 세우기에 충분한 기독교 공동체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한계를 무시하고 이용되는 경우도 있다. 일부 회교 지역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 그런 경우에는 이미 앞서 설명된 일부 한계 문제는 보류되어야 하겠지만 가능하다면 그러한 학교를 관리할 세 가지 원칙을 지키기 위해 더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체적인 규칙은 이 등급의 학교가 기독교 공동체의 설립보다 앞서서는 안 되고 그 이후가 되어야 하며, 그런 공동체가 없을 경우에는 선교회의 목적과 월등한 정신적 영향력으로 기독교로 개종시키려 기대할 수 있는 극소수 이상으로 학교가 커지는 것은 이 영향력이 제대로 행사된 이후에나 기대해야 할 것이다. (3) 본토 기독교인들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그러한 교육적 준비로서 위의 분류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신학적이나 성서적?교육학적?의학적?산업적?언어적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교육 활동의 등급은 보통 대학 혹은 고등교육과 결합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 그 목적과 원칙, 한계에 의해 제한되게 된다. 분리된 과정으로 교육을 하면 대학 과정의 완성에 대한 보충적인 것이 되거나 혹은 독립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a) 두 등급의 신학 교육이 제공될 수도 있다. 긴 일반 교육 과정 이외의 과정으로 아주 훌륭한 사람을 길러 내기도 할 것이고, 그런 목적으로 일반 성경 교육 과정이 요긴하게 제공될 수도 있다. 여성을 위한 성경 수업을 만들 수도 있다. 이런 기관에서는 위에서 설명된 원칙과 목적, 한계가 비교적 쉽게 적용된다. (b) 성경 교사들을 위해 한 두 달 동안 교육 과정을 운영할 수도 있다.학교나 교육 협회의 성격을 띤 그런 수업은 굉장히 유용하며, 사람들은 자기들의 여행 경비를 스스로 내거나 일부 기독교 공동체가 주체가 되어 그러한 정신적?실용적인 모임의 주요 목적과 함께 이를 받아들인다. (c) 복음의 목적으로 진행되는 일부 외국어 강좌 수업은 그 수업이 진행되는 목적을 성실하게 추구해서 목적이 어느 정도 확고해진 곳에서 유익하게 이용될 수 있다. (d) 의학 학교는 기독교적인 목적이나 공감과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지만 그렇다 해도 다른 교육 활동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진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훌륭한 의사를 키우는 것은 회교 지역에서 친구를 만드는데 일시적으로는 편리한 방법이기 때문에 일부는 그렇게 이용되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러한 학교를 정당화하는 목적으로서는 충분치 않다. 그러한 학교는 원칙적으로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철저히 기독교적이어야 하며, 경험상 그런 학교는 자활을 기대할 수도 있다. (e) 산업학교나 학부의 정책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많은 이사회들이 그런 학교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경험을 하고, 이들을 늘리는 것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탄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학교들도 분명 늘어나야 한다. 산업적 요소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많은 경우 실행 불가능할 수도 있는) 자활을 촉진시키는 목적이나, 혹은 최소한 자기 의존을 장려하고 자립과 노력이라는 고귀한 존엄을 가르치는 목적을 위해 바람직하고도 꼭 필요하기까지 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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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非)기독교인 교육 - 초등교육 |
초등학교(1) 초등학교는 (a) 어린이들의 가정에서 복음 활동 기회를 확보하거나 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기독교를 가르치도록 의도된 전도적인 것이거나 (b) 기독교인 자녀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구학교이다. 대부분의 초등학교에는 이 두 가지 기능이 복합되어 있다.이 등급의 교육 활동에는 다음 원칙들이 제안될 수 있다. (A) 그러한 학교들은 일정하고 철저한 전도적인 관리를 필요로 한다. 선교회에서는 철저하게 관리하고 도와줄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수의 학교를 세워서는 안 된다. (B) 기독교인 교사만을 채용해야 한다. 드물게는 비(非)기독교인의 채용을 정당화할 만한 예외적인 상황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럴 만한 확실한 이유가 있어야만 하며, 그런 학교는 끊임없는 관리를 해야만 한다. 본토 집회와 관련되면 초등학교는 토착민 사제의 철저한 관리를 받는 이점이 있으며, 사제가 교리 문답 교육을 맡을 수도 있다. (C) 이 학교들은 무조건 기독교여야 하며, 특히 그 학교의 우선적인 목적은 기독교로 개종시켜서 그 이후로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다. (D) 전도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가정에서 제공되는 모든 전도 기회를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일을 맡은 선교사는 너무 많은 학교를 열려는 유혹을 이겨내서, 이러한 관리와 활용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일이 없어야 한다. (E) 각 선교회의 초등 주간학교는 가능한 한 같은 교과 과정을 갖도록 해서 고등 등급 학교에 대한 준비 과정이 되게 하고, 고등학교에서 초등학부를 두어야 하는 필요성을 미연에 방지한다. 이것은 특히 교구학교의 경우 꼭 필요한 조건이다. 순수한 전도학교에서는 교사의 시간과 노력을 모두 직접적인 전도 수업에 쏟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F) 각 기독교 공동체가 자녀들에게 학교를 제공하며, 그 학교를 위해 필요한 건물과 가구, 서적, 교사 급여의 전체나 혹은 일부를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그 사람들의 지출도 스스로 지불할 수 있다면 이상적일 것이다.(G) 관심이 증가되기를 기다려야 할 수도 있지만 그런 학교의 지원에 관해서는 일반적으로 교구학교 지원은 선교회 이사회의 영구적인 책임으로 생각할 수 없다고 여겨질 수 있다. 기독교학교의 설립은 꼭 필요한 것이고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런 학교들을 제한된 범위 내에서 장려하고 지원하는 것이 ‘더 현명하고 효과적인 복음의 전파에 기여하고 극히 중요한 선교 결과를 약속하기 위한’ 선교회 기금의 이용으로는 적절한 정도이며, 가장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전도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이다. 그러나 선교사 사회는 스스로 소위 ‘교구학교’의 전반적인 설립과 운영을 완전히 책임지는 정책을 떠맡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는 토착 교회의 필요성을 넘어서는 것으로 토착 기독교인들 스스로가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 지원해야만 한다. 비(非)기독교인 아동들을 위한 학교에 대해서는 그런 학교들이 직접적인 전도 기관일 경우에만 선교회 기금으로 후원하거나 조력할 만한 적절한 대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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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정책 성명서 |
선교 사업의 현명한 방법으로서 교육을 이용하는 것은 우리 외국 선교회 활동 초기부터 총회와 이사회, 선교회 전체가 인정하던 일이다. 뉴욕 주 상급 법원에서는 고등교육의 목적을 위한 이사회의 요청과 관련해서 이 문제가 제기되어 논쟁이 되었을 때 이사회가 병합되는 결과를 이루려면 꼭 필요한 합법적인 기관이라고 선언했다. 이사회가 설립된 다음 해인 1838년 총회에서는 최초의 선교사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복음을 전달해야 할 사람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의 중요성을 최전면에 내세웠고, 그곳에서 그 사람들을 위한 기독교 지도자들을 키워 내야 한다고 했다.“이교도 어린이들에게 끝없는 관심과 기도를 보내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인들의 귀의를 절대 포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신의 말씀과 경험으로 볼 때 성령의 힘은 이교도들의 방탕이라는 뿌리깊은 습관은 물론이고 가장 어려운 난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모든 힘을 기울여 어떻게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여러분의 의무가 될 것입니다. 살아 있는 교사로서 신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바로 신의 성찬이며, 이것은 다른 어느 것과도 바꾸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시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을 우리 선교 사업의 큰 희망으로 생각합니다. 젊은이의 마음의 감수성은 더 크기 때문에 어렸을 때 새겨진 인상이 더 오래가고, 아직 뿌리를 내리지 않은 습관은 바꾸기가 더 쉽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선교 사업 최선의 효과 가운데에서도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마음을 다잡으려는 노력을 할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는 아닙니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라는 매개를 통해서 접근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자녀의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호의로 받아들일 것이고, 그들이 자녀들이 선교사들의 지도 아래 좋은 습관과 지식을 가지고 자라나는 것을 보면 이것으로 새로운 유대감이 형성될 것이며 그들의 마음으로 가는 새로운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분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 외에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실제적이고 편리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이교도 어린이들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일 것을 간곡히 부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지도와 학교는 모두 기독교적 성격을 강하게 띄게 하십시오. 성경이 어디에서건 조심스럽게 소개되도록 하십시오. 젊은이들을 위한 여러분의 노력을 기도로 신성하게 하시고, 우리 교회의 훌륭한 교리 문답이 가능한 한 빨리 지도 형식으로 폭넓게 자리잡게 하십시오. 이교도들 사이에 가능한 한 빨리 본토 성직자들을 길러 내는 것이 우리의 목적임을 기억하십시오. 이 목적을 달성하려면 특별한 문화에서 가장 장래성 있는 젊은이들을 가르쳐서 사정이 허락하는 한 그들의 교육의 수단을 향상시키기 위해 활발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무엇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자체적인 판단과 교회의 확고한 전통에 따라 총회가 내린 최초의 이같은 지시에 따라 우리 선교사들은 처음부터 학교를 선교 기관으로서 크게 이용해 왔다. 이것은 직관적으로 행해진 것이며, 우리가 알기로 이 문제에 어떤 전반적인 정책이나 이론적인 성명이 도입된 바는 없다. 사업 확장 노력에 있어 선교회와 이사회의 지도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보인 실행과 원칙을 키워 왔다. 모든 선교 교육의 목적은 간단히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첫째, 젊은이들을 기독교도로 키우기 위한 것.둘째, 그들을 기독교 신앙과 성격에 맞게 살도록 가르치기 위한 것.셋째, 그들로 하여금 주님과 사회를 위해 유용한 일을 하도록 헌신하게 이끄는 것.선교 교육의 이 세 가지 목적은 현재 각각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다른 등급의 선교학교에 여러 가지 형태로 주어질 것이다.(1) 초등학교(2) 중?고등학교(3) 전문학교, 신학, 교육, 의학, 산업학교초등학교(1) 초등학교는 (a) 어린이들의 가정에서 복음 활동 기회를 확보하거나 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기독교를 가르치도록 의도된 전도적인 것이거나 (b) 기독교인 자녀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구학교이다. 대부분의 초등학교에는 이 두 가지 기능이 복합되어 있다.이 등급의 교육 활동에는 다음 원칙들이 제안될 수 있다. (A) 그러한 학교들은 일정하고 철저한 전도적인 관리를 필요로 한다. 선교회에서는 철저하게 관리하고 도와줄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수의 학교를 세워서는 안 된다. (B) 기독교인 교사만을 채용해야 한다. 드물게는 비(非)기독교인의 채용을 정당화할 만한 예외적인 상황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럴 만한 확실한 이유가 있어야만 하며, 그런 학교는 끊임없는 관리를 해야만 한다. 본토 집회와 관련되면 초등학교는 토착민 사제의 철저한 관리를 받는 이점이 있으며, 사제가 교리 문답 교육을 맡을 수도 있다. (C) 이 학교들은 무조건 기독교여야 하며, 특히 그 학교의 우선적인 목적은 기독교로 개종시켜서 그 이후로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다. (D) 전도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가정에서 제공되는 모든 전도 기회를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일을 맡은 선교사는 너무 많은 학교를 열려는 유혹을 이겨내서 이러한 관리와 활용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일이 없어야 한다. (E) 각 선교회의 초등 주간학교는 가능한 한 같은 교과 과정을 갖도록 해서 고등 등급 학교에 대한 준비 과정이 되게 하고, 고등학교에서 초등학부를 두어야 하는 필요성을 미연에 방지한다. 이것은 특히 교구학교의 경우 꼭 필요한 조건이다. 순수한 전도 학교에서는 교사의 시간과 노력을 모두 직접적인 전도 수업에 쏟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F) 각 기독교 공동체가 자녀들에게 학교를 제공하며, 그 학교를 위해 필요한 건물과 가구, 서적, 교사 급여의 전체나 혹은 일부를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그 사람들의 지출도 스스로 지불할 수 있다면 이상적일 것이다.(F) 각 기독교 공동체가 자녀들에게 학교를 제공하며, 그 학교를 위해 필요한 건물과 가구, 서적, 교사 급여의 전체나 혹은 일부를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그 사람들의 지출도 스스로 지불할 수 있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G) 관심이 증가되기를 기다려야 할 수도 있지만 그런 학교의 지원에 관해서는 일반적으로 교구 학교 지원은 선교회 이사회의 영구적인 책임으로 생각할 수 없다고 여겨질 수 있다. 기독교 학교의 설립은 꼭 필요한 것이고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런 학교들을 제한된 범위 내에서 장려하고 지원하는 것이 ‘더 현명하고 효과적인 복음의 전파에 기여하고 극히 중요한 선교 결과를 약속하기 위한’ 선교회 기금의 이용으로는 적절한 정도이며, 가장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전도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이다. 그러나 선교사 사회는 스스로 소위 ‘교구학교’의 전반적인 설립과 운영을 완전히 책임지는 정책을 떠맡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는 토착 교회의 필요성을 넘어서는 것으로 토착 기독교인들 스스로가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 지원해야만 한다. 비(非)기독교인 아동들을 위한 학교에 대해서는 그런 학교들은 분명 직접적인 전도 기관일 경우에만 선교회 기금으로 후원하거나 조력해야 마땅한 대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2) 중?고등학교(A) 중?고등학교의 목표는 기독교인의 성격을 발전시키고, 안수를 받은 사제나 교사로서만이 아니라 훌륭하고 도움이 되는 활동이라면 어디에서나 본토 국민들과 교회에 도움이 되고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서 학생들을 길러 내는 것, 즉 학생들을 기독교 지도자로 길러 내는 것이다. 아직 기독교인이 아닌 이들 사이에 학생 단체가 형성이 되면 그런 학교의 직접적인 전도 목적이 분명히 인식되어야 한다. 1891년 스코틀랜드 자유 교회(Free Church of Scotland) 인도 파견단은 이 목적을 확실하게 표명했다.“우리는 실제적인 모든 선교 활동에 있어 한 가지 중요한 목표는 우리 동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세주로 알고 세례식에서 신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하나의 원칙으로 세워야만 합니다. 교회의 선교 활동은 “가서 모든 나라들을 가르쳐라. 아버지와 그의 아들, 그리고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을 세례하라”는 신의 명령에 대한 복종에서 이루어집니다. 모든 전도와 전도 방법들은 결국 이 시험에 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육 전도의 전도 가치를 논의하는 데 있어 우리는 인도주의의 확산과 교화 사상에서 비롯되는 모든 논쟁을 제쳐놓아야 합니다. 이런 논쟁들은 부수적으로는 환영할 만하지만 결국 문제는 이 모든 교육 활동이 구세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세례에 대한 신앙 고백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것으로 생각되는가 하는 점입니다.”이사회에서는 이 목적이 인정되어야 하며 모든 전도 학교의 기본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교육이 다음과 같이 기독교 전도 활동에서 네 가지 기능을 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 있어서는 에딘버러(Edinburgh) 회의(Edinburgh Conference)에서 있었던 기독교 교육에 관한 회의 결과에 동의한다. (a) 교육은 우선 전도 목적을 가지고 젊은이들을 기독교의 영향력 아래로 끌어오는 흡인력으로서 혹은 전도 기관 자체로 보이도록 실행될 수 있다. (b) 교육은 학교가 사람들의 교육과 계몽을 통해 기독교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목적을 갖고 있는 한에서는 우선 교화적이 될 수 있다.(c) 교육을 통해서 그 국가의 생명에 점차 진실의 원칙이 스며드는 한 교육은 감화적일 수 있다. 그러한 교육의 결과는 교회가 살아 남아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창출하는 데서 나타나고, 영향력 있는 계층이 기독교에 더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게 하는 데서 나타나고, 인간의 학습과 진보, 한층 높은 삶에 대한 기독교의 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더 늘어나고 있는 데서 나타나고, 종교의 자유가 장려되는 데서 나타나며, 사라지고 있는 기존의 토대를 대신해 사회생활을 위한 새로운 정신적 기반을 설립하는 데서 나타난다. 이 모든 방식을 비롯한 여러 방식으로 기독교 교육은 그 국가의 삶의 향상과 기독교의 궁극적 용인을 위한 준비에 이바지한다.(d) 전도 교육의 동기에는 사람들의 전반적인 복지를 증진하려는 박애적인 정신이 포함된다. 다른 국가와 대치하고 있는 기독교 국가의 경우 사람들은 예수님의 정신에 복종해야 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필요가 너무도 다양하고 심각하고 급박해서 기독교인으로서 자신들의 노력을 전도나 교화, 감화, 봉사에 한정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능력이 허용하는 한 자신들의 삶의 모든 단계에서 도움의 손길을 뻗쳐야 할 정도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때도 있다. 때로 더 넓은 의미에서 경제적이나 교육적인 조건에 맞춰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도 있을 수 있다. 물론 그 나라의 전체적인 기독교화라는 기독교 선교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항상 염두에 두고 말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 정신에 복종하는 우리가 항상 (기독교인이든 비(非)기독교인이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원칙들을 비기독교국(非基督敎國)의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B) 세 가지 원칙이 선교회의 관리하에 있는 이런 성격의 모든 교육 기관에서 지켜져야 한다. (a) 이 기관들은 업무에 철저해야만 한다. 이 학교들은 등급이나 교육 범위에 있어서 매우 다양하겠지만 무엇이든 그곳에서 가르치는 것은 철저하게 가르쳐야만 하며, 철저함 자체가 교육이기 때문이다. (b) 이 기관들은 그곳에서 배우는 학생들의 조건과 성격에 적응된 교육을 제공해야 하며, 삶의 조건과 학생들이 맡을 일에도 맞아야 한다. (c) 이 기관들은 무조건 기독교로서 학생들 전체를 강력하고도 사적인 종교적 영향하에 두어야 한다.(C) 이 목표와 이 원칙들은 선교회 내 이 등급의 교육 활동에 몇 가지 제한점을 시사한다. (a) 철저하게 교육시키고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 수 이상의 학생들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적은 수의 학생으로 시작해서 점차적으로 늘리는 것이 현명하다.(b) 기독교 학생의 수가 충분해서 학교의 성격과 분위기를 결정할 정도여야 한다. 이교도들의 영향력이 지배적이면 최선의 결과를 내는 데 치명적이다. 또한 지금까지의 경험에 근거해 볼 때 학교 입학을 기독교 학생이나 교회 자녀로만 제한하면 그 학교는 비(非)기독교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쳐야 하는 전도 영향력을 잃게 되고, 기독교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해서 여러 비(非)기독교인들을 만날 준비를 갖추게 하기 위해 필요한 성격을 단련할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 학생 수는 학생들과 개인적인 접촉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최대 수를 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확보될 수 없을 정도로 학교가 확대되는 것은 피해가 막심한 일이다. 각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살펴서 개인이 필요로 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학생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리를 위한 교육을 받는 낭비는 어느 정도 피하게 될 것이다.(d) 학생들이나 그들이 나중에 지도자가 되어서 이끌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이끌 사람들과 공감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언어나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 지도자와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너무 커서는 안 된다. (e) 특히 검소한 삶과 자기 의존적인 훈련 같은 원칙의 도입이 학교에 꼭 필요할 것이며, 겸손과 경의는 최고의 지도자에게 치명적인 자만 등의 감정을 막아 줄 것이다. (f) 인간 본성의 작용에 대한 폭넓은 견해와 비기독교인들의 지적인 생각과 성격과 미션 스쿨에서 하는 서구의 현대 교육과의 커다란 차이를 보아도 이 중등 및 고등교육이 함부로 주어지거나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필요한 지도자들의 수에는 한계가 있으며, 기존의 기독교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수나 새로운 공동체 혹은 사회에서 지도자로 필요로 하는 수 이상으로 교육을 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D) 이 중등교육이 전도 기관으로서 이용되는 분야가 있고, 그러한 활용이 주어진 목표와 원칙, 한계에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이에 아무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 학생들의 수가 지배적인 학교를 세울 정도로 충분한 기독교 공동체가 없기 때문에 그 활용으로 인해 그러한 한계를 무시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일부 회교 지역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 그런 경우에는 위의 한계 일부를 포기해야 하더라도 가능한 한 그러한 기관에 적용되어야 하는 세 가지 원칙을 지키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등급의 학교는 기독교 공동체가 설립된 이후에 진행되어야지 그에 선행해서는 안 되며, 그러한 공동체가 없을 경우에는 선교사들의 지배적인 정신적 영향력과 목적 아래서 기독교로 개종할 것으로 생각되는 아주 적은 수 정도의 규모로 한정하며, 그 이상으로 학교를 확장하는 것은 이러한 영향력이 행사되어 성공적인 결과가 나타난 다음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전체적인 원칙을 지켜야 한다. (E) 이 등급 교육의 재정적 지원에 대해서는 전도 활동이 현재 그런 교육의 혜택 제공으로 학생들의 후견인이나 부모들에게 집에서 학생들을 부양할 경우 들 비용을 면제해 주어서는 안 되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의복과 음식, 여행비, 서적을 포함한 잡비는 가능한 한 빨리 학생들의 부모들이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사람들 스스로가 교육의 전반적인 비용에 대해 연간 얼마간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교육의 가치를 인정하고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의 능력이 늘어남에 따라 그 비용 후원 정도가 그들에게 더 많이 주어질 수도 있다.(5) 본토 기독교인들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그런 교육 준비로서 상기된 분류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기술 및 신학, 의학, 산업, 언어 교육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등급의 교육 활동은 대학이나 중등 교육과 결합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에는 그 목적과 원칙, 한계에 맞게 관리되어야 한다. 따로 분리된 과정으로 가르칠 경우에는 대학 과정의 완료에 부수적으로 추가되거나 혹은 그와 독립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a) 신학 교육에는 두 등급이 제공될 수 있다.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유능한 인재가 정규 교육 과정이라는 긴 과정을 거치지 않고 길러지는 경우도 많을 것이며, 일반 성경 교육 과정이 그런 목적으로 바람직하게 이용될 수도 있다. 성경 수업이나 여자 성경학교를 세울 수도 있다. 다만 이런 기관에서는 이미 설명된 원칙과 목표, 한계가 비교적 쉽게 적용된다. (b) 성경 교사나 교직원회 지도자들, 초등학교 교사들을 위해 1년에 한두 달 동안 교육 과정을 운영할 수도 있다. 학교나 교육 협회의 성격을 띤 그런 수업은 굉장히 유용하며, 사람들이 자기들의 여행 경비를 스스로 내거나, 혹은 일부 기독교 공동체가 주체가 되어 그러한 정신적, 실용적인 모임의 주요 취지로 이를 받아들인다. (c) 복음의 목적으로 진행되는 일부 외국어 강좌 수업은, 그 수업이 진행되는 목적을 성실하게 추구해서 목적이 어느 정도 확고해진 곳에서 유익하게 이용될 수 있다. (d) 의학 학교는 기독교적인 목적이나 공감과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지만 그렇다 해도 이 학교들의 진정한 목표는 역시 다른 교육 활동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것이다. 훌륭한 의사를 키우는 것은 회교 지역에서 친구를 만드는데 일시적으로는 편리한 방법이기 때문에 일부는 그렇게 이용되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러한 학교를 정당화하는 목적으로서는 충분치 않다. 그러한 학교는 원칙적으로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철저히 기독교적이어야 하며, 경험상 그런 학교는 자활을 기대할 수도 있다. (e) 산업 학교, 농업 학교, 상업 학교. 전도 지역에서 성장하고 있는 새로운 기독교 사회들에는 직업은 물론 상업과 산업, 농업 지도자들이 있다. 자영 본토 교회들은 자활이 가능한 농부들과 상인들의 폭넓은 기반 위에 세워져야 한다.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이 다수의 비기독교인 사회는 그러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가족들로 구성되어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 대다수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로 들어가는 학생들도 학교에서 졸업하면 산업 생활로 뛰어들게 될 것이다. 이 계층들을 위한 특유의 학교는 문과나 전문학교만큼이나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역시 똑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많은 경우 실행이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자활을 촉진시키는 목적이 아니라 해도 최소한 독립을 장려하고 자립과 노력의 존엄성을 가르치는 목적을 위해서 산업적인 요소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바람직하고 꼭 필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4) 기타 형태의 교육 활동은 건전하고 유익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하며, 그러한 형태의 활동을 위해 주어지는 기금으로 선교 기관이 실행하는 합법적인 일로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의 영향이 선교회의 활동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아야 한다는 위험성이 존재하며, 복음의 목적으로 주어지는 기금으로 후원되는 교육 활동에 이미 정해진 원칙들이 적용되어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