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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병자료에 대한 전체 704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1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대본영육(大本營陸) 제132호 발간일: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발신일: 1904-09-20 발신자: 한국주차군 사령관 수신자: 한국주차군 사령관 훈령(訓令) 1.한국주차군을 한국에 주둔시키는 목적은 동국(同國)의 영토를 방위하고, 그 지역 내에서의 질서 안녕을 유지하며, 제국(帝國) 공관(公館) 및 거류민을 보호하는 데에 있다. 2.한국주차군 사령부는 경성에 위치한다. 3.한국주차군 사령관은 그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어떤 사건의 외교에 관한 것, 또는 한국 시정(施政)에 관한 것은 모두 재경성제국공사(在京城帝國公使)와 협의해야 한다. 4.주차 군대의 배치는 실제 정황에 맞추어야 하지만, 경성에는 항상 가능한 많은 군대를 주차시킬 것을 요한다.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 20일 참모총장 올림 한국주차군 사령관 앞

    12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궁내 注 제108호 발간일: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발신일: 1904-10-02 발신자: 외무대신 남작 고무라 도시타로 수신자: 외무대신 남작 고무라 도시타로 삼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야마가타 참모총장의 상주(上奏)에 의해 한국 황제폐하께 친서(親書)를 별지와 같이 보내므로 만일을 위해서 그 사본을 보냅니다. 메이지(明治) 37(1904)년 10월 1일 궁내대신 자작 다나카 미쓰아키[田中光顯] 외무대신 남작 고무라 도시타로 앞 삼가 한국 황제폐하께 고합니다. 짐은 특히 육군대장 남작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를 택하여 귀국 주차군 사령관으로 삼아 경성에 보냅니다. 요시미치는 짐의 숙장(宿將)으로서 지모(智謀)와 용략(勇略)이 누구보다 뛰어납니다. 이번에 특별히 명하여 궐하(闕下)께 보내는 까닭은 귀국의 변경(邊警)이 아직 편안하지 않고 인심이 움직이면 자칫 언제든지 놀라 동요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뜻밖의 사변이 일어나면 그 누(累)가 폐하께 미치게 되는 것을 염려합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요시미치를 깊이 신임하셔서 군국(軍國)의 일은 이에게 자문하시고 만일 입주(立奏)를 청하면 곧바로 이를 유악( 幄)에 불러들여 그의 진언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짐이 가장 희망하는 바입니다. 이 기회에 부쳐 짐의 공경 우애의 뜻을 표하고 겸하여 폐하의 강녕 복지를 바랍니다. 메이지(明治) 37(1904)년 10월 2일 도쿄[東京] 궁성에서 어명(御名)

    13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대본영육(大本營陸) 부관(副官) 제2010호 발간일: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발신일: 1904-10-05 발신자: 외무대신 남작 고무라 도시타로 앞 수신자: 외무대신 남작 고무라 도시타로 앞 메이지(明治) 37(1904)년 10월 5일 참모총장 후작 야마가타 아리토모 인 외무대신 남작 고무라 도시타로 님 하세가와 대장이 한국에 부임함에 있어 별지 복사의 친서를 한국 황제폐하께 증진(贈進)하게 되었으므로 통지합니다. (별지) 삼가 한국 황제 폐하께 고합니다. 짐은 특히 육군대장 남작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를 택하여 귀국 주차군 사령관으로 삼아 경성에 보냅니다. 요시미치는 짐의 숙장(宿將)으로서 지모(智謀)와 용략(勇略)이 누구보다 뛰어납니다. 이번에 특별히 명하여 궐하(闕下)께 보내는 까닭은 귀국의 변경(邊警)이 아직 편안하지 않고 인심이 움직이면 자칫 언제든지 놀라 동요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뜻밖의 사변이 일어나면 그 누가 폐하께 미치게 되는 것을 염려합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요시미치를 깊이 신임하셔서 군국(軍國)의 일은 이에게 자문하시고 만일 입주(立奏)를 청하면 곧바로 이를 유악( 幄)에 불러들여 그의 진언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짐이 가장 희망하는 바입니다. 이 기회에 부쳐 짐의 공경 우애의 뜻을 표하고 겸하여 폐하의 강녕 복지를 바랍니다. 메이지(明治) 37(1904)년 10월 2일 도쿄[東京] 궁성에서 어명(御名)

    14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제57호 통보(通報) 발간일: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발신일: 1904-10-06 하세가와 대장, 오치아이[落合] 소장은 오는 7일 오후 6시 신바시[新橋]를 출발하여 임지로 향합니다. 메이지(明治) 37(1904)년 10월 6일 대본영 육군 부관부(副官部) 인

    15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하세가와 대장 도한(渡韓)에 관한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발신일: 1904-10-06 발신주소: 한국 발신자: 고무라 대신 수신자: 고무라 대신 메이지(明治) 37(1904)년 10월 6일 발 재한 하야시[林] 공사 고무라 대신 이번에 하세가와 육군대장이 한국 주둔군 사령관으로서 도한(渡韓)하는 건에 대해 참모총장께서 별지 갑호 사본과 같이 동 관(官)에게 훈령하셨습니다. 이상으로 양해한 바와 같이 동 관의 임무는 주로 한국의 방비 및 질서 유지에 있습니다. 그리고 외교에 관한 것, 또는 시정(施政)에 관한 것은 먼저 각하와 협의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일에 관해서 각하도 일한 양국 어느 쪽을 불문하고 군사에 관한 사항은 모두 동 관과 협의한 다음 조처해 주기 바랍니다. 또한 동 관의 부임에 즈음하여 천황폐하께서 한국 황제께 별지 을호의 사본과 같이 친서를 보내셨으므로 조심하기 위해 이것 또한 여기에 사본을 첨부합니다. (별지 훈령에 친서 첨부)

    16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전보 발간일: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발신일: 1904-10-08 수신일: 1904-10-08 수신자: 대본영 10월 8일 오후 3시 35분 발, 같은 날 오후 5시 20분 착 대본영 앞 주차군 사령관 함경도에는 본디 노당(露黨)인 자들이 많아서 평상시에도 정부의 명령이 충분히 행해지지 않았는데, 지금 이 곳은 사실상 교전(交戰) 지역에 속하고, 우리 점령지구 내에서도 한국 관민(官民)이 많이 도망쳐서 지방 행정이 거의 행해지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군사상의 필요에 따라 이제부터 함경도 내의 우리 점령 구역 내에서 군정(軍政)을 시행하고, 수비대장에게 이 시행을 맡게 하였습니다. 다만 군정의 범위는 군사 행동상 필요 없는 것 이상은 가능한 한 지방 일반 행정에 끼어 들지 않는 정도로 하였습니다. 이 건은 공사(公使)와 함께 협의를 마쳤습니다.

    17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제310호 발간일: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발신자: 하야시[林] 공사 수신자: 하야시[林] 공사 수신주소: 한국 재한 하야시[林] 공사 고무라[小村] 대신 하세가와 대장은 7일 출발, 우지나[宇品]에서 승선하여 인천으로 직항할 것이므로 동 대장이 지참한 친서 및 동 대장에게 내린 훈령 사본은 이미 우송하였습니다.

    18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전수(電受) 제1032호 발간일: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발신일: 1904-10-11 수신일: 1904-10-11 발신자: 가와카미[川上] 부영사 수신자: 가와카미[川上] 부영사 수신주소: 성진(城津) 메이지(明治) 38(1905)년 10월 11일 오전 10시 30분 발, 동 오후 12시 53분 착 가쓰라[桂] 외무대신 성진(城津) 가와카미[川上] 부영사 제59호 하세가와 대장은 시가우라호[志賀浦丸]를 타고 오늘 오전 7시 반 이 곳에 도착, 동 9시 반 세이신으로 출발하였습니다.

    19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전수(電受) 제1706호 발간일: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발신일: 1904-10-12 발신주소: 인천 수신일: 1904-10-12 발신자: 고무라[小村] 외무대신 수신자: 고무라[小村] 외무대신 메이지(明治) 37(1904)년 10월 12일 오후 6시 30분 발, 동 오후 7시 55분 착 고무라[小村] 외무대신 인천 가토[加藤] 영사 제284호 하세가와 대장 일행은 오늘 오후 1시 무사히 항구에 도착하였습니다.

    20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전수(電受) 제1724호 발간일: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발신일: 1904-10-16 발신주소: 한국 수신일: 1904-10-16 발신자: 고무라[小村] 외무대신 수신자: 고무라[小村] 외무대신 메이지(明治) 37(1904)년 10월 16일 오후 6시 40분 발, 동 오후 7시 30분 착 고무라[小村] 외무대신 한(韓) 하야시[林] 공사 제709호 하세가와 대장은 오늘 한국 황제를 알현하고 친서를 봉정하였습니다. 본관도 알현에 동반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