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면 묘소

테이블제목
지역명 러시아
주소 옛주소 :
현주소 : 모스크바 루쥐녜츠키이 통로(Proezd Luzhnetskii) 2번지 노보제비치 공동묘지
상태 노보제비치 공동묘지 관리소에 의해서 잘 관리되고 있다.
관련사항 한말 신민회(新民會) 회원으로 교육·종교운동을 통한 계몽활동에 참가하였고, 침례교 목사로서 독립교회인 성리교(聖理敎)을 창립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3·1운동 후 항일투쟁단체 신민단(新民團)을 창단하고, 한인사회당 부위원장과 대한의용군사의회 군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규면의 묘
의견 묘지 관리소측과 협의할 문제이나 김규면의 간단한 약력을 기재한 표지판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또한 노보제비치 공동묘지는 러시아의 저명인사들이 묻혀 있어 관광코스로도 활용될 수 있어 김규면 묘를 자연스럽게 참배할 수 있는 모스크바 여행코스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념표시
특기사항


본문

백추(白秋) 김규면(1880~1969)은 한말 신민회 회원으로 교육·종교운동을 통한 계몽활동에 참가하였고, 침례교 목사로서 독립교회인 성리교(聖理敎)을 창립한 인물이다. 성리교를 인적, 물적 기반으로 하여 3·1운동 후 항일투쟁단체 신민단을 창단하였다. 김규면은 1919년 블라디보스톡에서 재조직된 한인사회당의 부위원장 겸 군사위원장으로 선임되었고, 신민단 부대는 1920년 6월의 봉오동전투에 참가한 바 있다. 1921년에는 만주에서 연해주로 이동해 온 군비단(軍備團)을 근간으로 조직된 대한의용군사회의 고문을 지냈고, 이후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차장 등을 역임하였다. 김규면은 1927년 장개석의 반공쿠데타 후 중국에서의 활동을 끝마치고 러시아 연해주로 돌아와 블라디보스톡의 서점에서 동양서적 판매원으로 일을 하였다. 1934년 이후 모스크바 등지에서 연금생활을 하였으며, 그의 자서전적 회상록인「노병 김규면 비망록(老兵 金規勉 備忘錄)」을 남겼다. 김규면은 1967년 러시아10월혁명 50주년을 기념하여 소련정부으로부터 적기훈장을 수여받았으며 사망 후에 노보제베치 공동묘지에 묻혔다.
노보제비치 수도원은 1524년 바실리 3세가 모스크바와 스몰렌스크의 통합을 기념하여 건축된 곳이다. 이 묘지는 모스크바 루쥐네츠키 프로예즈드 거리에 접해 있는 부지 7ha 면적에 조성되었다. 이 묘지는 니콜라이 고골리와 안톤 체호프가 묻힌 이후 묘지로 조성되기 시작하여 소련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시초프와 제2차대전 때 외무장관인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시인 블라지미르 마야코프스키,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 중국 공산당 지도자 왕밍(王明) 등의 시신이 안장되어 있다.
묘지 전체가 152개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입구를 지나 20m쯤 지나면 사거리가 나오고 그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벽면묘지가 있다. 벽면묘지 제132번에 김규면과 그의 부인 김나제즈다(1887~1973)의 시신이 합장되어 있다. 가로 35cm 세로 45cm의 묘 덮개판(플레이트) 위쪽 중앙에는 김규면의 사진과 왼쪽에 출생연도인 ‘1880’, 오른쪽에 사망연도인 ‘1969’ 쓰여져 있다. 하단 왼쪽에 부인의 사진 및 양쪽에 출생, 사망연도가 쓰여있다. 김규면의 사진과 부인 사진 사이의 중앙부분에 러시아어로 “극동에서의 소비에트 권력을 위한 투쟁 참가자 КИМб ЯК-ЧУ”, 그리고 그 밑에 한글로 김백추라고 새겨져 있다. 오른편 꽃꽂이 철제통 표면에는 ‘КИМ 김백추’ 왼편에는 ‘КИМ 김나쟈’라 새겨져 있고, 누군가에 의해서 태극기가 꽂혀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