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한국독립운동의 이념과 방략 - 제3장 초기(1910~1919)의 독립운동 - 1. 1910년대의 독립운동

나 인도 식민통치체제도 아닌 일제에 의한 직접 식민통치가 강요되었다.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의 소멸과 함께 곧 조선총독부가 설치되어 면리까지 통할하는 식민행정의 전달체계를 확립하고 조선군사령부가 지휘하는 헌병경찰이 전국을 지배하였다. 그리하여 민족적 조직을 모두 파괴하고 또 새로운 성장을 봉쇄했을 뿐 아니라 조선후기부터 동리계里洞契등을 통하여 성장한 동리자치里洞自治기능을 말살시키며 식민적 행정조직으로 개편해갔다그의 완성이 1914년의 행정개편임. 그러한 식민체제의 경제적 기반 즉, 수탈체제의 완성을 위하여 조선토지조사사업과 1911년 ‘회사령’을 발포 강행하고 조선은행과 식산은행 및 조선금융조합을 통하여 수탈금융체제를 확립하였다.

제국주의 침략의 기본 목표는 경제수탈에 있었다. 그런데 일본제국주의의 특징은 그 경제수탈의 영원한 계산이기도 한 민족동화를 획책하고 있었던 점이다. 그것은 식민문화의 확림을 통하여 달성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조선교육령’·1915년 ‘포교규칙’·‘조선반도사편찬사업’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민족의 독립운동도 갖가지로 전개되었다. 대한제국을 복원하려는 복벽주의운동도 있었고, 이제는 민족의 운명을 군왕에게 맡길 수 없다는 관점에서 혁명절차로 독립을 쟁취하려는 운동도 있었다. 그리고 대한제국의 멸망과 더불어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군을 일으킨 운동도 전개되었다.

1. 독립운동의 정비와 105인사건

1904년부터 대한제국의 멸망 절차가 진행되자 광무농민운동이 의병운동으로 전환하여2)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그 해 8월에

 

는 국민교육회國民敎育會가 결성되면서 계몽운동도 전개되었는데3)이때의 구국운동은 급한 나머지 정비되지 못한 측면이 많았다. 그런데 일제의 식민지하에서는 객관적 조건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체제정비가 필요했다. 나라는 망했으나 당장에 독립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이때 이회영李會榮·이상룡李相龍·허운·홍범도洪範圖처럼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군기지를 건설한 경우도 있었으며 또 각종 사립학교의 통폐합과 정비 등으로 민족교육의 발전을 도모한 경우도 있었는데 모두 독립운동의 체제정비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1910년대의 독립운동은 한말의 의병전쟁과 계몽운동으로 전개된 구국운동을 정비하는 작업으로 시작되었다.

그러한 정비작업의 특징은 의병전쟁을 독립군 조직으로 발전시켜 가는 것이었고, 계몽운동을 반성하면서 독립군 양성교육으로 개편하는 것이 중심적인 추세였으나 한편 채응언처럼 의병전쟁을 그대로 고집한 경우도 있었고 또 계몽주의에 머무른 경우도 적지 않았다. 국내에서 의병전쟁을 고집한 경우 외에는 중산층 인사가 시민적 특성을 보이고 있었는데, 어느 것이나 이념상으로는 발전 특성을 보이면서도 조직에서는 분산적이고 단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조직상의 한계는 일제의 탄압에 연유한 바가 컸다. 일제는 한말부터 민족적 사회조직의 발생과 성장을 파괴해 왔는데, 1910년에 이르러는 사회조직 봉쇄정책이 더욱 철저하였다. 기왕의 조직이 파괴당한 것은 물론이지만, 민족적 조직의 기미만 발견되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것을 대변해 주는 것이 안악사건安岳事件과 양기탁梁起鐸·주진수朱鎭洙등의 보안법 위반에 이은 105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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