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한국독립운동의 이념과 방략 - 제2장 한말의 구국운동 - 3.문화 민족주의

여 민족사학을 서술하려고 노력했고, 실증적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려고 한 흔적이 완연히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것이나 아직 만족할 만한 것은 못되고 또 중세적 명분론이 특히 삼한정통론을 중심으로 강하게 남아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나마의 근대적 시도도 세도정치기의 반동체제로 봉쇄되었고 그이후 시기인 개항 전후에는 개화인사의 외향성으로 말미암아 내재적 문제인 자국사에 대한 관심이 소홀하여 실학사서를 계승 발달시키지 못하였다.90)

그러다가 1894년 갑오경장과 더불어 자국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듬해의 「소학교령」·「한성사범학교령」·「성균관경학원규칙」에 따라 교과과정으로 ‘본국사’를 강의해야 할 당면과제에 봉착하여 1895년에 『조선역사朝鮮歷史』·『조선역대사략朝鮮歷代史略』·『조선사략朝鮮史略』 등을 출간하니 실학사서 이후의 공백기를 극복할 실마리가 풀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위의 책은 관찬사서였다. 1899년에도 『동국역대사략東國歷代史略』·『대한역대사략大韓歷代史略』·『동국사략東國史略』 등의 교과서가 나왔으나 역시 학부의 관찬사서였다. 사찬사서가 출간된 것은 1902년 김택영金澤榮의 『동사집략東史輯略』부터인데 그 후에는 관찬체제를 탈피한 사서의 간행이 진행되어 1904년부터 부상한 계몽주의에 따라 많은 학교가 설립되고 각급학교에서 한국사 교육이 활발하게 실시된 그 수요에 따라 새로 간행된 사찬교과서가 공급되고 있었다.91)그리고 국민교육회나 대한자강회를 비롯한 계몽주의단체에서도 국어교육과 더불어 국사교육을

 
개화기 간행되었던 역사서(좌로부터 『역사집략』, 『대동역사』

구국교육의 핵심 교과목으로 보고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1902년의 『동사집략』부터 민족사학이 일제의 침략사학에 밀려 그 아성이 허물어지고 있었다.92)민족주의적 역사의식을 표현하는 데도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특히 일제의 침략의도에서 서술하고 있는 가령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같은 것을 고증도 없이 수용함으로써 구국적 계몽주의의 결정적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93)그리고 앞에서 국어연구학회와 같은 토론의 광장도 마련하지 못하여 학문적 반성을 가질 기회조차 없이 식민사학에 전락해 갔다.

이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면서 민족주의사학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것이 1908년 신채호의 『독사신론』이었다.94)그러나 『독사신론』은 『대한매일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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