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한국독립운동의 이념과 방략 - 제3장 초기(1910~1919)의 독립운동 - 1. 1910년대의 독립운동

은 후일 국내 독립운동의 담당주체 가운데 시민적 중산층의 거취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1910년대 초 독립운동의 체제는 일제에 의해서 파괴당하고 있었다. 한편 조선귀족령에 의하여 76명이 작위를 받게 되어 그들이 조선귀족회를 만들었고,11)그 밖에도 이른바 은사금을 받은 많은 인사들, 그리고 1911년 이후 전국의 군대표를 일본을 방문케 하는 것 외에도, 만주의 재만동포로 하여금 이른바 ‘모국방문단’을 만들어 수시로 방문케 하는 등의 친일조직이 확산되어 가는 속에, 독립운동의 조직이나 민족적 분위기의 성장이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독립운동의 정비나 그 조직의 성장 발전이 용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반민족적 분위기가 일어나 독립운동의 이념이나 조직의 한계성을 유착시키는 것이 사실이었다.

2. 의병전쟁의 두 계열과 흐름
1) 의병의 민중적 항전

한말 의병전쟁은 1909년 가을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에 의한 일제의 야만적 반격으로 국내에서는 쇠퇴해 갔다.12)그러나 이는 그전에 국민전쟁과도 같은 의병전쟁에 비하여 쇠퇴했다는 것뿐이지 그렇다고 의병항전이 끝났다는 말은 아니다. 1910년 이후에도 의병의 유격전이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한편 1908년부터 의병이 해외로 이동하여

 

독립군으로 전환하거나 국내에서 술장수·엿장수·글방 훈도 등으로 잠적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10년 후 식민통치 하에서 의병이 전개한 최후항전은 특히 식민성 봉건체제 즉, 가례나 지키면서 안주하던 조선조의 귀족인 양반가정, 그중에도 당시는 토지조사사업이 진행 중이어서 그 토지측량에 만족하고 있던 부호의 가정에 대한 공격이 치열하였다.13)그러한 집이 많은 마을이면 마을도 공격하였다. 거꾸로 의병의 마을이면 마을사람들이 일제에게 무참히 학살되었다.14)

이때에 각 도에서 활약한 주요 의병장은 경기지방에서 전성근田聖根·최영우崔永宇, 강원지방에서 강두필姜斗弼·정경태鄭敬泰·신태여申泰汝·박치도朴致道·함병태咸炳台·이진도李鎭道·박문술朴文術·권태정權泰鼎·이기연李基淵, 충북에 최익삼崔益三·경북에 노병직盧炳稙·사상두史相斗·김병일金炳一·권욱영崔旭永·김완태金完泰·유시연柳時淵·최성천崔聖天·한명만韓明萬·윤국범尹國範, 경남에 안범성安範成·신임전申任典·신석원申錫元·이용운李龍雲, 전북에 이석용李錫庸·유장렬柳壯烈·박한국朴漢局·정세창鄭世昌·김학준金學俊·이의실李毅寬, 전남에 정세창鄭世昌·김학준金學俊·김수정金守正, 황해도에 한정만韓貞萬·채응언·이진룡李鎭龍·김정언金貞彦·김정안金貞安·고달순高達順, 평북에 한응정韓應貞·이진룡李鎭龍, 평남에 동종찬董宗贊·김재화金在化·홍석준洪錫俊·이용석李龍石·김이도金利道등이었다.15)

그리고 1911년과 1912년 양년에 강원도에서만도 교전회수가 43회였다고 한다.16)그와 같이 중부 이북 지방에서 의병항전이 더 격렬하게 전

80   81